세상의 기준을 만든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측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시계를 보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속도를 살핀다. 또 옷을 살 때도 몸에 맞는 치수를 확인하고, 채소나 과일을 사면서 저울에 무게를 단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가 측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 실험은 측정을 통해서 결과를 얻게 되므로 정확한 측정은 과학기술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측정표준은 지금까지는 주로 길이, 시간, 질량 등과 같은 물리량에 대해 확립되어 왔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사람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측정표준의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그 응용분야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의 오염,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물에 포함된 유해성분, 우리가 사용하는 시설이나 장비의 안전, 첨단 의료 측정기술 등 우리의 삶과 직접 관련된 분야에서 측정표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측정표준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건강하며 안전하게 지켜 줄 수도 있다.

최근 국가암등록사업을 통해 나타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치료 시,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선형가속기를 활용한 방사선 치료이다. 이때 인체 내부의 악성종양에 대한 위치를 파악해 정확한 양의 방사선을 투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사선 치료를 위해서는 암 치료에 널리 이용되고 있는 선형가속기 방사선에 대한 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이 표준을 보급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암세포 조직을 떼어내지 않고 암을 세포 수준에서 바로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측정표준은 국민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데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자동차산업에서는 수많은 부품들의 조합으로 완제품이 완성된다. 수만 개의 부품들이 정밀하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밀도는 바로 그 나라의 측정표준 능력에서 비롯된다.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도 표준기술이 없으면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웨이퍼가 정말 30나노미터 수준인지 비교할 수 있는 측정표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규제가 심해지고 있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예를 들면 환경오염에 대한 선진국들의 규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각 나라들은 자동차 배기가스의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상을 넘을 경우 수입하지 않는 등의 규제 조항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을 쌓아 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자동차를 수입하는 나라는 수출국의 유해물질 측정능력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입국은 자기 나라의 측정기관에서 측정을 다시 하려 하고 이는 수출비용과 시간의 증가로 이어져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을 과학기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측정표준 상호인정협약이 지난 1999년에 체결된 바 있다. 이러한 상호인정협약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각국의 측정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국제비교를 실시하고 그 결과는 각국의 측정과학 기술수준 및 측정결과의 신뢰도를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의 경우, 세계적 측정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산업체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으며 더불어 국제기구에서의 우리나라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성장과 우리의 삶의 질 향상, 나아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측정기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 측정표준은 제품의 품질향상과 수출증대에 관심이 있었다. 그 당시 삶의 질 향상 조건은 ‘먹는 문제 해결’에 있었으며 측정표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측정표준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건강하며 안전하게 지켜 줄 수도 있다. 표준이 올라감으로써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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