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심장인 도쿄 시부야 역에는 낯익은 9명 소녀들의 초대형 간판이 걸려 있다. 다름 아닌 한국의 대표 걸그룹인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 앨범 ‘지니(GENIE)` 의 광고 간판이다. 그녀들은 데뷔 싱글 발매 당일 데일리 차트 4위로 출발해 2위를 차지하여 일본 팬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또 다른 타이틀곡 ‘지(GEE)` 역시 오리콘 데일리 차트 1위를 함과 동시에 위클리 차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카라’ 역시 특유의 파워풀한 율동으로 일본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고 있으며 ‘포미닛’은 일본 3대 도시 투어를 1만여 명의 팬들과 함께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5일 공개된 일본 내 저명한 가요계 시상식인 골든디스크에서 소녀시대와 카라는 ‘올해의 신인상’과 ‘더 베스트 뉴 아티스트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나란히 2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일본 내 수많은 신인 아티스트를 제친 결과여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른바 한류 열풍은 걸그룹 뿐만이 아니다. 한류스타 원조 격인 배용준이 그렇고 지난해 김태균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의 원천은 과연 어느 곳에서 나오는 것인가.

미국의 사상가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2005년 아시아 성장과정 연구에서 다른 민족이 300년간 이뤄낸 성과를 한민족이 단 40년 만에 성취한 것에 크게 놀라며 한국 탐구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문화는 한 사회 안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전제조건 등인데 한국은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 특유의 ‘발전 지향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이지만 아직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일본의 그늘을 벗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매일 밟고 일하고 걸으면서 접해 있는 토지이다. 사람에게 호적이 있듯이 땅에는 지적(地籍)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지적제도는 일본에 의해 1910년에 시작된 토지조사사업을 기초로 작성된 종이 지적도와 임야도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낙후된 장비, 기술수준, 종이도면의 오랜 사용 등으로 인해 지적 불부합지 등 근원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로 인한 측량비용과 소송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연간 400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우수한 문화 DNA를 가지고 있고 일본을 뛰어넘는 훌륭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지만 국가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제도인 지적제도 만큼은 아직도 일본인들이 만든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1951년에 제정된 국토조사법에 의해 지적재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1962년 국토조사촉진특별법을 제정, 2009년 12월 현재 전 국토대비 약 49%의 진척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지적주권을 되찾고자 1995년부터 지적재조사 시범사업 실시, 특별법 제정 등을 추진하여 왔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다. 2004년 지적법 개정 당시 ‘국가는 토지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지적재조사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하였고, 새 정부 들어 국토해양부와 지적공사가 2008년부터 3년간 전국 16개 시·군에 ‘디지털지적구축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등 지적재조사사업을 준비하고 지난해에는 기획재정부에서 국책사업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지적재조사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남은 일제 잔재 청산이다. 새해에는 우리 지적인들의 ‘착한 숙원’인 지적재조사사업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룡<대한지적공사 대전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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