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유난히 매서운 강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북극권의 온난화 탓으로 빙하가 녹은 찬 공기가 남쪽으로 몰려온다는 해설이 따르지만 지구의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다. 여기에 구제역의 대책 없는 확산 소식까지 겹쳐 새해 벽두를 맞는 민초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더욱이 우리의 터전인 한반도는 남북관계가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심리적인 체감온도는 더욱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가장 호전적인 북한을 머리맡에 두고 지냈다. 그간 북한의 위험은 만성화되어 불감증의 지경에 이르렀는데 북한의 포격 도발로 벼랑에 서 있는 우리의 안보상황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어쩌면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만성병 증세를 치유하는 쓴 보약이 된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분단 이래 글로벌 마켓에서 끊임없이 북한 리스크, 코리안 디스카운트에 시달려 왔다. 그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하여 지난해 국민총생산(GDP), 무역규모, 주가시가총액이 모두 1000조 원대를 돌파하는 이른바 ‘트리플 1000조 원 시대’를 연 것은 정말이지 대견하고 신통한 일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10년이 시작되었다.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동진(東進)하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세계경제회복의 버팀목이자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안보·군사적 측면에서 한반도 주변은 세계의 슈퍼파워로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미국, 일본, 러시아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새로운 냉전공간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 속에서 북한이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불장난을 거듭하고, 진정성 없는 대화제의 등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대남선동에만 매달리는 것은 너무나 딱한 일이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데 후계자 김정은을 위해 1억 파운드(1700억 원)를 들여 호화주택을 건설 중이라고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가 보도하였다. 영도자 수퇘지들의 부패로 몰락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한심한 작태이지만 당장 어찌하랴? 마치 암세포의 증식을 막도록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안보 역량을 키워 북한의 군사 모험주의에 대한 빈틈없는 억지력을 구축하고, 합리적이고 유연한 태도로 북한의 변화,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 어부들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산 채로 소비지까지 운송하기 위하여 청어의 천적인 메기(catfish)를 수조에 넣어 청어를 더욱 강하게 한다는 일화가 있다. 얼마 전 대기업 회장이 메기를 미꾸라지 양식장에 넣으면 미꾸라지의 활동이 많아져 튼실해지고 육질이 좋아진다는 메기론을 신경영의 화두로 제시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당장 어쩔 수 없다면 북한을 메기와 같이 생각하자. 적절한 긴장과 자극은 변화에 적응하는 삶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로키산맥 해발 3000m 높이의 수목한계지대에는 ‘무릎 꿇은 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곳의 나무는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춰 자라서 마치 무릎을 꿇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볼품없이 꾸부러져 자라는 이 나무가 세계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있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박비향)를 얻을 수 있으리오(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라고 읊은 당나라 고승 황벽(黃檗) 선사의 열반송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다.

도통한 선사의 경지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안치환이 생각난다. 흉악한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별난 가수는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낸 그 사람,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 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패하고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손안에 있다. 희망이라는 무기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토끼해 신묘년의 새 아침에 희망을 담아 보자. 고난에 무릎 꿇지 않고 고난을 무릎 꿇게 하겠다는 소망이다. 군집생활을 하는 토끼가 지혜와 상승,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화합의 상징인 만큼 올해 토끼형상을 하고 있는 한반도에 북녘의 변화, 화해와 호혜의 온풍이 불어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꽃이 만개하기를 기대해 본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이 따뜻하다는 소박한 진리를 믿으며 오늘의 혹한을 이겨보자.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새 필진 김진환 변호사 약력

부여 출신, 서울법대 졸, 법학박사, 대통령법률비서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한국 포렌식학회장, 재경부여군민회장,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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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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