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애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발하자 중국은 북한 편을 들었고, 며칠 전에는 서해 우리 영해에서 불법 어로를 하던 중국 어선이 우리 해경 함정을 들이받아 선원이 사망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강경한 어조로 이 사태에 책임지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은 1978년에 개방에 나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올해에는 드디어, G2 반열에 올라섰다. 대망의 실현이다. 20여 년 전 개방을 준비하며 그들이 내걸었던 명분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덩샤오핑이 내건 이 슬로건의 뜻은 ‘은인자중하며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도광은 중국 한말 공융(孔融)의 ‘離合作郡姓名字(이합작군성명자)’에 나오는 시구 ‘美玉韜光(미옥도광)’이 그 출전이다. 공융은 한말의 난세에 자신의 처세와 지향을 그렇게 표현했는데, 덩샤오핑의 인용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권토중래(捲土重來)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군사과학원 연구원들이 부인하였지만 다시 말해 한때의 난관이나 치욕을 인내하며 야망을 품고 힘을 길러 미래에 패자가 되자는 의지가 서려 있으며, 덩샤오핑의 19세기 이래 역사인식과 향후 국가전략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이 말로 자신의 비전을 강화하면서 체제의 이념과 맞지 않는 개방을 앞두고 중국 내부의 불만 세력을 무마하고 또 그들에게 동참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한 것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길을 걸은 인물 중에 강태공과 유비가 있다. 강태공은 은나라 말기에 어부로 은거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 경륜을 몰래 닦았고, 유비는 한나라 말 조조의 막하에서 비굴한 면모를 연출하며 뒷날 촉나라를 건국할 힘을 길렀다.

지난 20여 년 중국은 세계와 교류하며 도광양회의 시대를 거쳐 왔다. 매판으로 치부되는 해외 자본을 과감하게 수용하였고, 토지의 조차를 먼저 제안하며 중국의 인민들을 그 자본에 값싸게 종사시켰고, 무엇보다 은인자중하며 자본과 기술을 줄기차게 비축하였다. 도광양회가 성공할 기반이 마련될 무렵 집권한 후진타오는 드디어 그 후속으로 ‘화평굴기’를 내세웠다. 즉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일어서되 패권으로서가 아니라 평화롭고도 평등하게 세계와 관계하며 존중받는 의로운 리더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년 중국의 행보는 ‘화평굴기’인가? 국익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기습 공격과 일방도발을 무마할 수 있는지 의문이며, 티베트 영구 식민지화에 가차없고, 확실한 근거 없이 난사군도와 시사군도 해역에서 영해문제를 일으키며 아세안을 위협하고, 센카쿠 열도에서는 일본과 충돌하며, 아프리카에서는 자원을 과도하게 점유하며 유사 식민정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두가 힘의 과시를 바탕에 둔 패자(覇者)의 모습이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1840년 이래 그들이 그토록 혐오해 오던 당대 서구 열강과 일제의 행태를 일부 닮아 있어 아이러니하다.

중국은 실로 화평굴기하여, 지난날 자국이 겪었던 핍박과 억울함을 단절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그래야 주변 국가들로부터 중화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냉전이 해체되고 지구가 한 촌락이 된 21세기에서 인류는 19, 20세기처럼 살아서는 안 되고 그렇게 살 수도 없다. 중국은 말 그대로 새로운 화평의 세계역사를 쓰는 데 동참하여야 한다. 그래야 대국다운 대국이 될 것이며, 도광양회도 다시 해석될 것이다. 조조도 한때 동탁의 막하에서 도광양회한 적이 있는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도 중국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2000년부터 중국의 몇몇 대학과 교류를 하고 있다. 그 사이 많은 학생들이 3+1제도로 중국에서 파견교육을 받았고, 중국 대학의 교수들도 우리 대학에 와서 중국어를 교육하고 있다. 파견교육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으며 장래 양국에 더 큰 결실을 맺을 것을 의심치 않고 있으며, 재직 교수들과 중국 교수들과의 우정은 이미 깊어 일상의 고민을 같이 의논하며 서로 돕고 있다. 물정 모르는 기대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한중 관계가 우리들처럼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해를 공정하게 처리하면서 진심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역사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의지로 진전되면서 발전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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