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기 (충남도의회의장)

덩그러니 매달린 한 장의 달력이 안쓰러워 보인다. 벌써 한 해를 정리하는 때가 또다시 돌아왔다. 우리 도의회도 지난 21일 제239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를 끝으로 올해의 모든 공식적인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정례회에는 지방의회의 핵심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사무감사와 2011년도 예산안 그리고 5기를 이끌 조직 개편을 포함한 31건의 조례를 처리했다.

이번 정례회에서 도의회가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충남개발공사 채무 이자 12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2011년 예산안 심사에서는 불요불급한 예산 30억 원을 삭감하는 등 집행부의 건전한 견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재원 문제로 그동안 도와 교육청 간 이견을 보여 왔던 무상급식의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이 밖에도 충청권 배제 움직임에 맞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조성을 촉구하고, 지난 100년간 불합리하게 설정된 해상경계를 바로잡기 위해 ‘서천·군산 간 공동조업 수역지정 건의안’을 채택하여 국회 및 각 중앙 부처에 강력히 건의하는 등 지역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출범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이처럼 모범적인 의회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45명의 도의원들의 열성과 노력일 것이다. 사실, 이번 정례회에서 보여준 의원들의 자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충실한 의정활동을 펼치기 위해 많은 의원들이 자료 준비와 연구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고,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특히, ‘도시락 행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식사 시간까지 아껴가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장면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번 마지막 정례회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만 5세아 무상보육료 지원 관련해서는 이해 당사자인 보육시설 연합회 회원들과 사립학교 유치원 관계자들이 각각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심사 과정과 본회의 의결 과정을 방청하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의사 과정에 있어서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나타났다. 그동안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던 행태를 탈피해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한 실질적인 심사가 이루어졌다. 이번 회기를 통해 도의회는 그동안 식물의회 또는 거수기라는 오명을 벗고 집행부의 건전한 견제 기관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얻었다.

물론,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마찰과 잡음이 일부 빚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집행부와 의회 간의 힘겨루기 또는 의회의 발목잡기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와 집행부 간의 대립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의회의 본연의 역할인 견제와 감시 기능을 인식하지 못한 잘못된 생각이다. 이번 집행부와 의회의 충돌이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 도의회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의견 대립이 불협화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의정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정례회에서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임위와 예결위의 이견이 불거져 예결위 위원직을 사퇴하거나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한 관련 상임위를 결정하지 못해 회기를 넘기는 등 내부적 갈등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상임위와 예결위가 심사한 예산이나 조례를 본회의에서 번복하는 등 의사 진행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점 또한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다.

더불어, 이번 정례회는 안희정 호가 풀어야 할 과제도 안겨주었다. 전면 무상급식이라는 첫 단추를 꿰기는 했지만, 매년 1000억 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관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다. 더욱이 지난 9월 제정한 벼재배 농가 경영안정 직불금 예산 확보에도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만 5세아 무상 보육료 지원 문제와 같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양 단체 간 갈등을 조장하는 정책 결정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숨 가쁘게 달려온 경인년도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다. 다가오는 신묘년(辛卯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또한 해야 할 일도 많다. 앞으로 우리 도의회와 집행부는 이러한 소중한 성과와 아쉬움을 거울삼아 지역 발전과 200만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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