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한국한의학연구원장>

‘텐, 텐, 텐’. 얼마 전 화려하게 끝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양궁이 중국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봤다. 10점을 연달아 표적에 맞힌 주현정·기보배·윤옥희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듯했다. 언제부터인가 양궁은 우리나라의 독무대였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면 원래부터 활 잘 쏘는 ‘동이족(東夷族)’이어서일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사실 양궁은 유럽에서 시작한 스포츠다. 유럽인에 맞는 운동이다. 국궁과 달리 양궁은 동양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다. 긴 활시위를 당길 때도 동양인에 불리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양궁의 양대 산맥은 미국(남자)과 소련(여자)이었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조차 일본에 한참 뒤졌었다. 한국 양궁 지도자들이 독한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우리 선수들의 체격에 맞는 기술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기술공유를 위해 ‘궁우회(현 지도자협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전국 각지의 지도자들이 연간 2-3회가량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우리나라 양궁의 문제점을 짚으며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갔다. 덕분에 한국 양궁은 지도자 간에 기술적 단절이 적다. 초·중·고 이후에 대학생, 혹은 실업팀으로 성장하더라도, 큰 틀에서 기술과 자세에 대한 지도법 변화가 없기 때문에 연속성 있게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켰다. 결국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양궁 강대국이 되었고 우리나라식 양궁훈련이 세계 양궁의 교범이 되었다.

이 같은 성과는 우리나라 양궁 지도자들이 ‘더 나은 기술 습득’이라는 한 가지 목표와 치밀한 전략을 모아 달렸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후 양궁이 우리나라 아마추어 체육 단체들 가운데 가장 파벌 갈등이 적고 지도자들이 똘똘 뭉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 천연물 신약 개발 붐이 불고 있다. 정부가 잇달아 천연물 신약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는 향후 1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5대 사업 가운데 하나로 ‘전통의학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을 꼽았다. 물론 천연물 신약 개발 공략의 핵심은 한의학이다. 1000조 원 규모인 전체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한의학의 보고인 동의보감이나 향약집성방과 같은 데이터베이스(DB)를 과학적으로 활용해 표준화 작업을 벌이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얼마 전 지경부에 뒤질세라 맞불을 놓았다. 복지부는 얼마 전 오는 2015년까지 천연물 연구 분야 세계 3위 진입이라는 목표를 내놓았다. 복지부는 5년 동안 글로벌 천연물 신약 2종 이상 ,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평가국(EMA) 임상실험승인(IND) 5종 이상의 신약 개발을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이처럼 천연물 신약 개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천연물 시장의 가능성 때문이다. 사실 천연물 신약 연구 분야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천연물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수준이지만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천연물 신약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또한 화합물 신약 개발이 한계에 다다른 점도 천연물 신약 개발이 탄력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약업계에서는 합성신약 분야는 더 이상 합성을 해볼 게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시장 진입 신약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만성질환과 같이 다중병인이 있는 경우 유효하며 안전성이 탁월하다. 선진국 역시 시장 진입 초기 단계이며 미국 내 임상시험 7건, 유럽 내 임상시험 5건 등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제약 선진국이나 우리나라가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는 의미다.

10여 일이 지나면 또다시 새해가 밝는다. 양궁은 서양에서 시작한 스포츠다. 한때 양궁을 주무르던 서양을 따라잡은 것은 20여 년 만이다.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서도 우리는 결국 양궁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양궁을 지배하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선진국에 비해 유리한 고지에 이미 올라 있다. 우리는 수천 년의 한의학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양궁보다 연구개발 환경이 수월하다는 뜻이다. 정부 지원도 가시권이다. 조상들의 의학적 지식이 축적된 힘과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산업화를 위해 민간이 혼연일체가 된다면, 또 다른 양궁 신화를 재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김기옥<한국한의학연구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