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IV대학 정순평 학장

최근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안을 놓고 서울시와 시의회 상호간에 대립각을 세운 모습이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해당시와 시의회는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의회가 조례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할 방침이며, 시의회가 또 다시 재의결한다면 대법원에 조례안 무효소송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시가 취하는 모든 조치가 실패해 조례안이 확정되더라도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무상급식은 사실상 힘들 듯하다.

상황을 보면 서울시와 시의회 사이 그간 서로의 가슴 속에 쌓였던 불만이 수면 위로 부상되면서 마치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배수(背水)의 진(陣)을 친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쌍방이 적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서지 않는 한 아이들의 밥상을 둘러싼 갈등은 악화일로일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일까? 사실 그 갈등의 태생은 6·2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포함한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와 민주당 지자체 후보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문제를 교육의 한 방법론적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이념과는 동떨어진 화두이기도 한데, 당시 정치판에서는 명확하게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었다. 먼저 보수 진영에서는 무상급식 공약을 복지 낭만주의에 기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무상급식이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 사회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올해는 우리의 풀뿌리 지방의회가 1991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적잖은 시행착오와 여러 난관들을 겪으면서 우리의 지방자치는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집행기관과의 균형문제, 중앙정치 영역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일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6·2 지방선거는 여러 정치적 쟁점사항과는 별개로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 역사가 짧은 우리 지방자치사를 또 하나의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집행부의 장을 배출한 정당과 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정당이 서로 다른 여소야대의 상황이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그것. 정치권이라는 곳이 서로 다른 가치와 헤게모니를 제시하며 국민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는 집단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여소야대라는 단체장과 의결기관이 갖는 구조는 사실 대립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이후 교육계와 지방정치권으로 대거 진입한 진보 성향의 교육감과 단체장들이 연말 예산정국에서 2011년도 예산안에 무상급식 예산을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체장과 지방의회간 무상급식 조례안 공방이 서울시만이 아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의회와 집행부가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 상호간 견제와 균형의 궤도를 타면서 지방발전을 위한 어젠다를 만들고 정책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현재 양자간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리적 의사결정과 효율적 집행기능은 전적으로 상호간 의견존중, 대화와 타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협과 접점이 없는 한 어느 하나의 수레바퀴가 크거나 작아서도, 어느 하나의 그 것이 빠지거나 궤도를 이탈해서도 지방자치 발전이라는 대의제를 성공적으로 견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의결기관과 집행기관은 지방자치라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 지역사회를 발전과 번영으로 이끌 막중한 임무를 졌음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관이 그를 구성하는 인적 구성원의 당적과 당론에 종속되어 맡은 바 책무를 다 하지 못한다면 우리 지방자치의 발전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으며, 위기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울바람이 차다. 따뜻한 희소식이 간절하다. 모쪼록 어렵게 피운 우리의 풀뿌리 지방자치 불씨가 낯선 시험대 위의 눈발 시련을 넘어 한 단계 더욱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진정 그 눈발 밑 언 땅에 뿌리내린 민초(民草)들의 작은 소망이라면 사치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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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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