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당진교육지원청 교육장)

어제 TV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귀에 꽂혀 맴도는 말이 나왔다. ‘희망을 갖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온 구절이라 더 유명한 말이지만 연말인 요즘 더욱 새롭게 반추될 수 있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올해 역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태풍 곤파스가 훑고 간 자연재해와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격사건 등 사람들의 가슴에 많은 상처를 남기고 저물어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사회는 각박해지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의 크기도 작아진다. 더구나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시련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운신의 폭을 좁힌다.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꿈이나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해가 거듭될수록 포부나 모험심이 약해지고 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희망을 키워 보려는 학생은 줄어들고 실현가능한 목표에 안주하려는 학생들이 늘어간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거나 시련이 와도 금방 포기하고 절망한다. 용기를 배우기 전에 체념부터 먼저 배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희망교육, 꿈을 키우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늘 자문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85일째 커다란 청새치를 잡지만 이를 노리는 상어와의 싸움이 또 시작된다. 그래도 파도와 싸우고 상어와 겨루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흘간의 사투 끝에 상어에게 다 뜯기고 뼈만 매달고 집으로 돌아왔으면서도 그날 밤에는 또 아프리카 사자의 꿈을 꾼다. 그처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인간승리의 모습은 인간존재의 형식과도 닿아 있다. 불패의 정신과 도전의욕은 모두 꿈과 희망이 원천이 아니던가.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픈 역경을 딛고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된 오프라 윈프리, 휠체어 위에서 우주의 비밀을 푼 스티븐 호킹, 세계 모든 사람들의 집에 개인용 컴퓨터를 지니게 하겠다는 꿈을 이룬 빌 게이츠, 자신의 동화 같은 꿈을 모든 사람들의 꿈으로 만든 월트 디즈니, 백성들 모두 편한 글자를 읽고 쓰게 만들겠다는 세종대왕,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등 그들은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지 않는가.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열어보지 말라고 준 상자를 열었을 때 이미 불행은 다 뛰쳐나왔다.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분노와 절망 등 대부분 불행의 다른 이름들이었다. 그래도 인간이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은 판도라의 상자 안에 딱 하나 남겨진 희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불가능한 꿈도 희망을 간직하고 키운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 상자 안에 영원히 떠 있는 태양과 같다. 다만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절망의 구름에 잠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 희망으로 꿈의 나무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서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자양분 삼아 쑥쑥 자란 꿈의 나무가 모이면 숲이 되고 산이 된다.

2011년은 신묘년 토끼해라고 한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어 그 밑에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희망적이라고 한다. 인류는 그 확인을 위해 달을 정복할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져 왔다. 우리 아이들이 더 크고 높은 꿈을 키우도록 교육이 바로 희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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