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관세청장>

충남 예산 가야산 자락에 있는 남연군묘는 우리 근대사의 우울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은 생부인 남연군의 묘를 경기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했다. 왕(王)이 나오는 자리라는 게 이장의 이유였다. 남연군 묘는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와 미국인 젠킨스에 의해 도굴당할 위험에 처한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흥선대원군을 통상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훗날 미국 법정에서 젠킨스는 조선과의 통상조약 체결과 조선관리 한 명을 세계일주 시켜주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젠킨스는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흥선대원군은 분노했다.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을 단행한다. 쇄국정책은 결국 조선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140여 년이 흐른 지금 쇄국의 단초를 제공했던 대전과 충남은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경제 시대의 중심이 돼 있다.

11월까지 대전의 수출은 28억 달러, 충남은 447억 달러다. 역대 최대의 수출액으로 올해 수출 순위 세계 7위 달성의 일등공신이 대전과 충남이다. 여기에 무역흑자 354억 달러 중 244억 달러를 충남에서 벌어들였다.

수출 품목도 긍정적이다. 대전은 연초류와 냉방기, 정밀화학원료가 수출 품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충남은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석유제품 등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상품이다.

내년 우리 수출입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명실상부한 무역대국으로 성장해 나가는 원년이 될 것이다.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성장동력은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한-EU FTA와 한-미 FTA다. 대전과 충남 기업들도 FTA를 바탕으로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경제영토로 삼아야 한다.

EU와 미국의 FTA로 생기는 경제적 이득은 막대하다. 한-EU FTA로 당장 우리 기업이 누릴 수 있는 관세절감 혜택은 1조 8000억 원, 15억 달러 정도다.

미국과의 FTA 효과는 더 크다. 발효 이후 10년 동안 실질 GDP는 6%가 증가한다. 3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조업의 대미수출증가액만 연 13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로 인한 무역흑자액만 연간 7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관세 철폐로 인한 우리 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포함하면 FTA는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임이 틀림없다. 2004년 우리는 칠레와의 FTA 체결 후 한국제품 점유율을 2.9%에서 7.2% 급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FTA를 통해 세계를 우리의 경제영토로 삼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원산지 인증에 대한 대비가 그것이다.

FTA 협정에서는 각 체결국마다 다른 원산지 결정기준을 갖고 있다. 이 기준에 맞춰 한국산이라고 인정돼야 관세 철폐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원산지를 증명하는 서류를 세관이나 상공회의소 등에서 발급받아 상대국에 제출해야 한다.

내년 7월부터 시작되는 한-EU FTA는 한층 강화된 원산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EU는 중국산 제품이 한국으로 원산지를 세탁해 EU로 수입되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EU와의 FTA 협상에서는 6000유로 이상을 수출할 때는 오로지 한국 세관에서 원산지 관리 능력을 인증받은 업체에게만 FTA 혜택을 주도록 협정을 맺었다.

미국 역시 수출기업과 부품 공급업체까지 직접 방문해 원산지를 검증하는데 여기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벌금폭탄’에 휘말리게 된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체결된 EU나 미국과의 FTA로 우리 경제영토를 만들어가기 위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대전과 충남의 기업들이 경제영토 선점의 개척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윤영선<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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