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법조칼럼

“형사사건에도 조정이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사건에도 조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형사조정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형사조정은 ‘화해 중재’라는 이름으로 대전지검, 부천지청, 서울 남부지검 등 3개 청에서 시범 실시되었다. 그 효과가 대단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자, 2007년 8월부터 전국의 모든 지검 및 지청으로 확대 실시되었고, 형사조정 의뢰 건수도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2007년에는 7963건, 2008년에는 1만1496건, 2009년에는 1만6201건이었다. 그동안 검찰실무의 하나로 운용되어 오던 형사조정은 2010년 5월 전면 개정된 범죄피해자보호법 제6장(형사조정)에 그 명문규정을 두기에 이르렀다. 형사조정제도가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 안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형사조정은 사기, 횡령, 배임, 명예훼손, 모욕, 지식재산권 침해, 임금체불, 폭행, 상해, 경계침범 등으로 고소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사건의 담당검사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형사조정에 회부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지검 또는 지청에 구성되어 있는 형사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의뢰하게 된다. 형사조정위원은 민간위원으로서 법적 지식 등 전문성과 덕망을 갖춘 사람 중에서 임명되며, 조정기일에 당사자 사이의 공정하고 원만한 화해와 범죄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실질적인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형사조정은 ‘조정성립’ 또는 ‘조정불성립’으로 끝맺는다. ‘조정성립’이 되면 대부분의 경우 고소인은 고소를 철회하고 담당검사는 기소하지 않은 형태로 사건을 종결하게 된다.

원래 형사조정은 ‘회복적 사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회복적 사법이란 형사사법의 목적을 응징(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 그리고 피해 회복에 둬야 한다고 강조하는 개념이다. 종래의 ‘응징적 사법’에 대응하여 새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형법학자들은 회복적 사법을 21세기 형사사법의 가장 주요한 흐름으로 간주하고 있다.

기존 형사사법에서는 죄형법정주의와 절차법정주의에 따라 정해진 엄격한 절차 속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롤 플레이를 한다. 법원, 검사, 변호사가 그들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바뀌어도 그들은 늘 같은 사람이다.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언어로 이뤄지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절차의 대상일 뿐,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물어보거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이 요구하고 싶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형사사법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하여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인가?

형사조정과 같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서는 종래의 형사사법과 달리 엄격하게 정해진 절차가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비롯한 사건관련자들이 자발적·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생활언어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질문할 수 있다. 요구할 것이 있으면 이를 명확하게 요구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할 수도 있다. 형사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격정적인 언어교환을 통해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고 나면 대부분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그럼으로써 해결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형사조정위원은 인내심을 가지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당사자들이 생산적인 과정을 통해 성공적인 결실에 도달하도록 섬세하게 배려하고 촉진하게 된다.

필자는 대전지검에서 형사조정이 시범 실시되기 시작했던 2006년 봄부터 지금까지 5년가량 형사조정위원으로 일했다. 원칙적으로 무보수 자원봉사직이었다. 우리나라 형사조정제도가 대전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형사사법을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현장에서 직접 제도를 실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형사조정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선진 각국의 다양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관련 프로그램들을 더 정교하게 설계 또는 개선해야 하고, 프로그램 운영자 및 조정위원의 전문성과 역량을 더 제고해야 하며,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역할도 증대해야 한다. 형사조정과 같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들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형사사법’으로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회복적 사법이 가능하다.’

<김용욱 배재대 법과대학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