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수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자선냄비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벌써 연말이 다가왔나 보다. 지난주에는 찾아가는 자선냄비 행사가 학교에서 열렸다. 때마침 각종 연말 모임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들이 쏟아진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보게 되어 즐겁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역시 허전하다. 이럴 때 다시 쳐다보는 그림이 있다. 내 연구실에 걸려 있는 ‘산다는 게 뭔지’라는 그림이다. 남들에게는 보잘것없는 그림이지만 나에게는 28년 동안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준 그림이다. 항상 ‘탐욕의 열차’가 다가올 때마다 바라보며 되뇌는 그림이다.

그렇다. 금년에도 수없이 되뇌어 보았지만 산다는 게 뭔지 모른 채 그냥 지나친 한 해였나 보다. 조금은 후회가 든다. 그러나 머무를 시간도 없다.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행복공동체’를 위한 작은 배려이다. 작년 이맘때였다면 연말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물이었던 사랑의 온도탑에 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질 텐데 금년에는 아직 소식이 없다. 아마 금년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하지 않거나 다른 모금 상징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홈페이지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걸려 있다.

사랑의 온도탑에 나타난 이 겨울은 너무 춥다. 2010년 12월 13일 현재 11.4도라는 매서운 추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들은 이 온도탑을 보는 순간만 추울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은 2011년이 일 년 내 추운 겨울일 것을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빈부격차의 심화로 어려운 이웃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더욱 슬프게 만든다.

물론 그 일차적 책임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단체에 있다. 국민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맡겨준 기탁금을 성실히 관리해 달라는 여망을 저버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있다. 그러나 공동모금회가 밉다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려운 이웃을 버려둘 것인가. 국민의 관심이 떠나면 버려지는 것은 모금단체가 아니라 우리의 어려운 이웃이다.

금년도에는 우리 국민들의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예측이 있었다. 이것만 보면 분명 우리는 점점 잘살아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이전보다 어려운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경쟁은 점점 심화되고 그 결과 많은 이웃들이 일터에서 내몰리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정의로운 사회’라는 화두와 함께 우리 사회의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존 롤즈의 ‘정의론’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이전보다 잘사는 사회라고 말하려면 “그 사회의 최빈층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을 때”라고 말했다. 단지 1인당 평균 개념의 GDP가 아닌 최빈층의 삶의 질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롤즈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사회를 이전보다 잘사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잘사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행복공동체는 국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국가가 행복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것을 복지국가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다양한 원인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현 상태대로라면 국가가 행복공동체를 만들어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이 잘못하였다고 그들을 외면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는가. 대리인의 잘못이 있다면 그들을 질책하고 바른길로 인도하여 올바른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외면보다는 우리 국민의 따뜻한 마음을 보내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행복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행복공동체는 우리 모두의 참여 속에 만들어질 수 있다. 비록 모금회가 밉고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려운 이웃을 외면할 권리가 적어도 우리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 보자. 우리의 관심과 참여 속에 ‘행복공동체’의 꿈은 점점 커갈 것이다. 공동모금회의 아쉬움이 ‘행복공동체’로 결실 맺는 12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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