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애플(Apple)의 아이패드(iPad)는 출시 전부터 소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더니, 출시 1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100만 대가 판매됐고, 출시 8개월 만에 누적판매 1000만 대 돌파를 목전에 두면서 태블릿PC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탭의 출시로 2개월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였고, LG전자를 비롯한 IT기업들 역시 태블릿PC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올 초, 전문가들은 2014년까지 전 세계 태블릿PC 누적판매량을 2700만 대 이상으로, 연평균 판매성장률은 49%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이 수치는 상향조정 중이다. 이미 올해만 1100만 대가 넘게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태블릿PC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스마트폰, 스마트TV, 전자책 단말기, 디지털액자 같은 새로운 디바이스들이 즐비하다. 가히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스마트 디바이스 열풍은 갑자기 불어닥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애플은 이미 1993년에 태블릿PC의 전신 개념이라 할 수 있는 Newton OS를 탑재한 웹패드인 ‘MessagePad’를 출시했었다. 그러나 복잡한 조작법과 저조한 펜 인식률로 인한 소비자의 외면으로 ’98년에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초에도 IBM, Boundless, Netpliance,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등 수많은 IT기업들이 다양한 웹패드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은 웹패드 대신 노트북PC를 선택했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높은 가격, 조잡한 디자인, 휴대성의 제한, 복잡한 조작법, 펜 인식기술 미비 등이 지적되었으나 한마디로, 고객 니즈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진보에 따른 혁신을 시장과 소비자에게 강조하는 제품전략(Technical Push)이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전략(Demands Pull)보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스마트 디바이스 경쟁에서의 승부처는 고객 니즈와의 접점이다. 고객 니즈를 얼마나 빠르고, 만족스럽게 해결해 주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 디바이스 시대의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다양한 고객 니즈 분석결과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첫째, 디지털 피로감에 시달리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간단한 조작방법을 선호한다. 아이패드는 3개의 버튼만으로 부팅과 조작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노트북 사용에 서투른 노년층 소비자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

둘째, 21세기는 프로슈머 시대다. 즉, 소비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하는 시대인 것이다. 기존의 PC가 콘텐츠의 생산에 효과적이었다면, 최근의 태블릿PC나 스마트폰 등은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결국, 스마트 디바이스가 기존 PC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단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용이한 콘텐츠 제작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 스마트워크 시대가 개막되면서, 어디에서라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모바일 환경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휴대용 디바이스에 PC 수준의 컴퓨팅 파워와 멀티미디어 프로세싱이 가능한 기능 탑재가 요구된다.

넷째, 디바이스 가격이나 이용비용 등은 여전히 중요한 선택요인이지만, 과거와 같이 절대적 요인은 아니다. 고기능에 편리한 이용자 접근성을 갖춘 디바이스라면 더 이상 가격이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다섯째, 미래학자 Richard Watson의 말처럼, 첨단기술은 계속 진화하지만 그럴수록 감성과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제품디자인이 중요한 선택요인인 것이다.

끝으로, 소비자들은 새로운 IT 디바이스 구매 시 오락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즉, 디바이스 이용이 즐거워야 하고, 신선하고 창조적인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동작인식 등의 획기적인 UI,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실시간 상황인지(real-time context-awareness) 기술을 적용한 콘텐츠가 스마트 디바이스의 오락성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현실만을 본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가 출시되고, 혁신적인 스마트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더 이상 하드웨어 강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여유가 없다. 스마트 디바이스 경쟁시대에, 우리는 고객 니즈와 기술경쟁력이라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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