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충남대 교수)

성난 농민들이 지난 2일부터 충남도청 마당에서 쌀 ‘야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쌀값 폭락 등으로 쌀 농가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분노한다. 특히 농민들은 지난 9월 ‘충남도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 지원 조례’가 제정되었음에도 충남도가 쌀 직불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충남도는 ‘쌀 직불금 조례’에 명시된 ‘매년 8월 말까지 지원대상자 결정’에 근거 올해에는 직불금을 지불할 수 없고, 내년부터 직불금을 지불하더라도 도의 재정형편상 농민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민과 도의 입장이 다르지만 자기주장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충남의 쌀 생산농민이 처한 이중고(전국 평균 이하의 쌀값과 올해의 쌀 생산 감소)를 고려하면, 충남도가 ‘쌀 직불금 조례’를 내년부터 실시하기 때문에 ‘쌀 직불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한다면 궁색하다. 굳이 조례가 아니라도 쌀 농가의 어려움을 일부 덜어줄 수 있다. 이미 전남과 경남, 전북 등 일부 자치단체가 직불금 조례 없이 ‘벼경영안정자금’을 지불하고 있다. 따라서 충남도의 경우 올해에만 ‘긴급 쌀 농가소득지원금’을 지불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충남도가 올해 얼마의 긴급지원금을 지불하면 좋을까. 쌀 농가 입장에서는 많을수록 좋겠지만, 도의 재정상황은 녹록지 않다. 충남도의 농업예산은 약 6300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약 19%로 적지 않지만, 농업예산의 거의 대부분은 중앙정부의 사업을 집행하는 데 사용되고 충남도가 독자적으로 집행하는 농업예산은 600억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이 돈은 이미 쌀 농가뿐 아니라, 과수농가, 축산농가 그리고 농업기반구축 등에 사용되어 쌀 농가를 위해 새롭게 예산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문제의 해법을 정치적으로 찾아보자. 일단 현재 다른 도에서 쌀 농가에 지불하고 있는 정도의 돈을 충남도가 지불하기로 서로 합의하면 어떨까. 광역자치단체마다 차이가 커서 합의가 쉽지 않을 수 있으나, 벼 농가에 대한 각종 지원금이 가장 많은 전남과 비교하면 충남도와의 차액은 대략 150억 원(도와 시군비를 포함)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올해의 ‘긴급 쌀 농가소득지원금’의 구체적 금액을 정하면 헥타르당 10만 원 수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긴급지원’이라는 정책 효과를 높이고 영세농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지급기준면적의 상한을 2-3ha 정도로 제한하면 좋겠다.

올해는 ‘긴급 쌀 농가소득지원금’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의 ‘긴급 쌀 농가소득지원금’을 내년에는 조례에 따라 쌀 직불금으로 전환하면 된다. 다만, 우리가 함께 생각할 몇 가지 점들이 있다.

첫째, 농민들의 쌀 투쟁이 매년 되풀이되는 이유는 비단 쌀값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성적이고 심각한 농촌문제가 국민의 주식인 쌀을 매개로 폭발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쌀 직불금을 올려 주는 일시적인 해법이 아니라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중앙과 지방의 근본적 해결 노력이 시급하다.

둘째, 쌀 직불금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현실에서 한계가 있다. 쌀은 전국의 모든 농민이 생산하고 식량안보에 매우 중요한 작물인 만큼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몫이다. 셋째, 그럼 충남도가 할 일은 무엇일까. 충남도는 무조건 쌀 농가에 면적당 얼마씩 나누어 주는 식의 직불금보다는 충남 쌀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직불금을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충남 쌀이 소비자의 평가가 좋지 않아 전국평균보다 값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 직불금을 주되 친환경 고품질 쌀 생산을 장려하는 방식 등이다.

넷째, 쌀 직불금 논의를 계기로 지금까지처럼 농민단체는 충남도에 대해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충남도가 이를 거절하면 실력행사로 맞서는 악순환을 단절할 방안을 마련하자. 충남도는 농민을 농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여 함께 정책을 결정하고, 농민들도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내놓고 함께 고민하는 주체적 자세가 필요하다.

민선 5기 충남도는 곧 농민단체, 도와 시군 및 의원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농정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위원회가 형식적 위원회가 아니라 현안인 쌀 직불금 문제 해결은 물론 충남 농업·농촌의 발전 정책을 마련하고 심의하는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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