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지난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 사고 3주년을 앞두고 피해 어민들에게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태안군 유류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태안=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지난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 사고 3주년을 앞두고 피해 어민들에게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태안군 유류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태안=빈운용 기자 photobin@daejonilbo.com
사상 최악의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올해로 3주년을 맞는다. 세계 재난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었던 123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가시적인 기름 때는 걷어냈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는 크고 깊다.

피해 배상 마무리는 물론 해양 생태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하다. 배·보상 문제로 5명의 농·어민이 스스로 생을 거뒀다.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로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을 입은 충남 태안 지역은 올 여름 태풍 곤파스로 인해 또한번 멍이 들었다.

태안군민들은 말한다. “이 나라에 정부가 있습니까?”

멕시코만 원유 유출 문제를 해결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교하는 목소리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2조가 넘는 피해보장기금 조성에 합의하는 모습은 피해 주민들에게 ‘미국=희망의 나라’ 또는 ‘한국=절망의 나라’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사고 이후 악몽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피해 지역을 찾아가 봤다.

◇멀고 먼 피해배상

더딘 배·보상 절차는 태안 지역 피해민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한다. 그동안 충남도 서해안유류사고대책지원본부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7만2508건. 이 가운데 증빙서류 등을 갖춰 배상금 지급을 청구한 것은 6만9889건으로 1조2169억12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산정한 배상금액은 전체 신청액의 2.3%인 284억9500만원(9997건)에 불과하고, 실제 지급액은 1.2%인 152억여원(1422건)에 그쳤다.

손해를 입증할 자료가 없는 맨손어업 주민들은 사고가 난 지 1년 6개월 뒤인 2009년 5월에야 청구를 시작했다. 맨손어업 주민의 피해 신고는 전체 수산업 종사 피해자의 신고 건(5만8578건)의 83.9%(4만9194건)를 차지한다.

비수산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전체 1만3930건의 피해 신고 가운데 인정 건수는 1629건으로 기각률이 무려 70%에 달했다.

IOPC는 배상 최고액을 3216억원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이중 방제비용으로 이미 1200억원을 출연해 실제로 배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2000억원 뿐이다. 사고를 낸 삼성의 경우 보상 최대액이 56억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지 못하는 것은 104개국에 달하는 IOPC 가입국간 형평성 때문이다.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배상액을 무작정 높여달랄 수 없는 처지다. 미국은 IOPC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방제작업과 수산물 안정성을 이유로 어민들의 조업을 최대 263일까지 제한했던 정부가 IOPC가 이 기간의 49%만 인정하겠다는 입장에도 잠자코 있는 것은 문제다.

태안군 유류피해대책위연합회 문승일 사무국장은 “이 기간 동안 서해 어장은 중국 어선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자국 어민들의 터전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주고도 어느 하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무능, 무책임한 정부다.

◇바다 속은 곪아있다

자연은 치유력이 빠르다.3년의 시간 동안 태안 앞바다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수산물에 대한 각종 안전성 검사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꽃게와 대하, 굴, 김 등 어족 자원의 상거래는 갈수록 활발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일까? 국토해양부가 한국해양연구원에 의뢰해 올 9월에 내놓은 ‘유류오염 환경영향평가 및 환경복원연구’에 따르면 가루미, 소근리 갯벌 등의 유류 잔존퇴적물에는 여전히 사고 초기와 유사한 오염이 나타났다. 또 펄질 퇴적물 지역에서는 생물 독성이 관찰됐고, 오염지역 내 이매패류(참굴·바지락·담치)의 건강도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따라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는 이 지역 생태계와 어장 환경, 태안해안국립공원 등의 복원을 목적으로 2019년까지 총 4786억원 규모의 재정투자계획을 세웠지만 기획재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태안군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 용역을 통해 내놓은 복원 계획을 정부가 반대하고 있는 꼴”이라며 “정부의 의지가 없는 건지, 짜고 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류 오염의 경각심을 높이고, 123만 자원봉사자의 헌신적 노력 등 해양환경 복구에 대해 교육 홍보할 목적의 ‘유류피해 극복 전시관’ 건립 사업 마저도 기재부 예산 심의서 미반영됐다.

◇무관심한 정부, 희망마저 죽였다

소원면 의항 2구에서 만난 이병수 할아버지(72)는 연신 담배만 빨아 물었다. 집 앞 자그마한 포구에는 대여섯척의 배가 있었지만 유류 사고 이후 한번도 띄워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인근 100여 가구가 모두 같은 처지다.

“굴 양식으로 먹고 살았어. 한철 일해서 근 2000만원은 벌었지. 사고 나고 부터는 텃밭에서 하루 먹을 농사를 짓고 있어. 정부 지원금도 없는데 굶어 죽을 수는 없잖은가.”

포구에 쳐 놓았던 굴 양식 시설이 기름으로 오염된 뒤 새로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새로 하려면 몇 억, 몇 십억은 있어야 하는데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해. 피해 보상금? 없었어.”

실제로 정부 차원의 관심은 없었다. 사고 직후 정부가 내놓은 지역 경제 활성화 사업안(2008년도 총 946억원)에는 서산 대산항 조기건설(244억), 서산 국도38호선 도로 건설(170억), 충남 연근해어선 구조조정(171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 언뜻 서해안 원유 사고에 대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지역경제활성화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추진해 온 사업이다. 때문에 충남도와 태안군이 2016년까지 50개 사업 1923억원의 실질적인 예산 지원을 요구했지만 반영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가 피해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최근 현재 피해민들에게 지급했던 대지급금과 대부금에 대한 이자를 받으려는 작업을 준비중이다. 특별법 제8조에 따라 무이자로 지급됐지만 최대 7%의 이자를 물리기 위해 관련법 개정고시를 추진하고 있다.

유류 피해 주민들의 건강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환경부와 보건복지부의 중장기 영향조사 결과 화학물질과민증 의심 주민이 늘고있고, 방제지역 학생의 천식 유병율이 2배나 높았다. 파도리의 경우 젊은 층을 포함해 암 발병율이 높아지는 등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따라 무료 암 검진 및 건강검진 센터 설치를 위해 14억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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