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원대학교 중국학과 4학년 전두진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고3. 하지만 그 당시 영어 과목을 가르치시는 담임선생님은 유난히도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중국은 분명히 머지않아 강대국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하여 중국어 또한 영어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중국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중국어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공을 정한 다음 가고 싶은 대학을 찾아보던 중 목원대학교의 3+1제도를 알게 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커다란 행운이 오리란 걸 암시라도 하는 듯 이 제도에 자석처럼 끌리듯 지원하게 되었다. 3+1제도란 말 그대로 대학의 3년은 본교에서 그리고 1년은 중국유학 즉 교환학생 제도였다.

군 제대 후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하면서 중국유학을 한 학기 남겨두고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학기를 마치고 마침내 중국으로 떠날 날짜가 다가왔다. 처음 가보는 해외인데다 그때만 해도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마저 없던 시기였기에 주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마냥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만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앞이 캄캄하기만 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문득 마음가짐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인하여 중국까지 왔는데 한번 열심히 생활해보자.”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상상하니 나 자신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짐을 하고 나니 앞으로의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우선은 중국인들과 부딪쳐보기로 했다. 중국어는 책만 보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그렇듯이 많이 듣고 많이 말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우선 중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운 좋게도 흑룡강대학교 안에 있는 배드민턴 동아리를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귀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이때부터 나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중국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중 한 중국친구와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다. 사천에서 온 친구였는데 집에도 초대해 나에게 직접 사천요리도 만들어 주었는데 사천요리답게 굉장히 매웠었다. 이렇게 중국친구들은 타국에서 온 나에게 전혀 거리감 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친구들도 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두 달이 좀 넘는 이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선택한 것이 여행이었다. 대략 한 달간에 걸쳐 북경, 소주, 항주, 상해, 대련, 심양, 백두산을 갔었는데 나의 중국어 실력을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중국대륙은 과연 어마어마했다. 실로 하얼빈에서 북경 가는 시간만 해도 12시간이 걸렸는데 기차에서 잠을 잔다는 게 낯설게만 여겨졌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밤기차는 잠을 자면 되지만 낮에 탈 경우엔 엄청난 고역이 뒤따랐다. 하지만 보상이라도 받는 듯 그 지역의 관광지를 가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북경의 용경협과 백두산 천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2008년 중국에서의 교환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중국음식도 맛있었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중국친구들도 보고 싶고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의 1년은 중국어 공부를 하는 데에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타국이라는 먼 곳에서 생활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또 다른 공부였기에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아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은 대전 한화이글스 프로야구팀 동계훈련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3+1제도가 나에게 많은 행운을 가져다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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