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극동<코레일 전기계획팀장>

“당신이 천 원에 양심을 파는 정도여요?” “아니 얼마나 속상하니? 국도를 택했으면 더 빨리 갔고 통행료도 내지 않잖아.” 그렇게 난 통행료를 내지 않겠다고 하고 아내는 내라고 하다가 결국 천 원을 내고 요금소를 통과했다. 15년여 전의 일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살 때 서울에 갔다가 늦은 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서울에서 의왕 방면으로 가는 길은 과천에서 평촌을 거쳐 일반국도로 가는 방법과 과천에서 백운저수지를 지나는 유료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더 빨리 갈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탔는데 얼마 달리지 못해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히고 말았다. 금방 풀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갔는데 나중에 보니 마지막 지점에 터널 내부공사를 하느라 한쪽 차선을 막고 있었다. 국도보다 10여 분 빨리 가려다 오히려 고속도로를 택해서 더 늦어졌고 통행료까지 내게 된 것이다.

교통요금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조건 없이 무한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택시를 탔다가 버스를 탔을 때보다 요금은 더 내고도 더 늦게 가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만 상하기도 한다. 며칠 전 퇴근 무렵 대전 둔산 지역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다른 일 때문에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전역 사옥에서 둔산 지역까지 평소 6000원 정도 요금에 2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퇴근시간이라 배 이상 걸릴 것 같았다. 택시를 타자마자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택해 가자고 했더니 작은 골목길을 돌아서 달렸다. 정말 총알같이 달려 20여 분 만에 도착해 주었다. 물론 평시보다 많은 9000원의 요금이 나왔다. 난 만 원을 드리면서 거스름돈도 받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10여 분의 빠른 시간이 나에게는 소중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라는 말로 교통소요에 비추어도 뜻이 통한다. 시간이 짧아질수록 값어치가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속버스보다 KTX가 더 비싸고 KTX보다 비행기가 더 비싸다.

지난 11월 1일 고속철도 2단계(동대구-부산)를 개통하고 나니 KTX 요금문제로 일부에서 야단이다. 22분을 당겼는데 요금은 4300원(주말 기준)이나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초 2시간 40분 거리인데 실제 2시간 18분으로 운행하는 열차는 3-4편이고 나머지는 2시간 30분대로 길게는 2시간 38분까지 운행하여 겨우 2분을 당겨서 4300원이나 더 받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실은 이전에도 2시간 40분 운행열차는 7-8편이었고 정차역 수에 따라 3시간 3분까지 평균 2시간 50분대를 운행했었다. 이번에 고속선 2단계를 개통하면서 대부분의 열차가 평균 22분 정도 줄어 2시간 30분대를 운행하고 있다. 철도공사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개통된 노선이 늘어나면서 고속신선으로 대부분의 열차를 운행하기 때문에 선로사용료(기차통행료)를 더 내야 할 판이다. 사실은 이번에 개통한 노선은 정상적으로 계산하면 7000원 정도 더 올려야 한다. 철도공사에서는 국민 부담을 고려해서 요금을 줄여 선로사용료 낼 정도만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고속철도는 정부에서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설기관이 채권을 발행 건설하고 철도운영자에게 선로사용료를 받아 갚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고속철도 선로사용료는 수입의 31%를 납부한다. 고속철도 2단계 건설에 소요된 건설비는 약 8조 원이다. 이 중 선로사용료로 갚아야 할 금액은 운영부분인 역사시설부분과 기반인프라인 궤도, 구조물, 전기, 통신, 신호시설의 50% 정도인 4조 원이 넘는다. 이 돈을 다 갚으려면 차량구입 및 운영비와 이자를 제외하고도 어림잡아 현재 2단계 구간 하루 평균 이용승객 5만 명이 약 50년 동안 탑승해야 갚을 수 있다. 그러나 2단계 구간 개통 이후 승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마도 50년 훨씬 이전에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만약 요금을 올리지 않았다면 또 다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므로 국민들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더 빨리 가려고 택시를 타곤 한다. 그리고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으면 돌아서라도 간다. 그에 따른 요금 또한 당연히 더 낸다. 시내에서 유료도로를 이용해도 마찬가지로 통행료는 승객이 부담한다. 만약 빨리 가려고 혼잡한 도로를 피해 돌아가서 택시요금이 더 나왔는데 이전에 다니던 요금으로 낸다고 우긴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운행노선 길이가 길어 직선노선보다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하는 것은 도로나 항공 그리고 해운도 동일하다.

반극동<코레일 전기계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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