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호 대전시교육감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로 번역되는 라틴어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이 말을 외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해진 용어다.

이 영화에서 미국의 명문 웰튼학교 키팅 선생은 미래의 대학입시나 좋은 직장을 위해 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이 흐르고 난 이후의 시간을 자기 인생의 행복한 시기로 예정하면서 살아간다. 지금보다 2시간 후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시간이면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오늘보다는 며칠 후가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며칠 후면 친구들과 여행할 수 있는 주말이 있으니까. 이보다 더 큰 행복은 몇 년 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땐 한적한 전원에서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과 물질적 여유가 있을 테니까. 이렇게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 동안 진정한 행복을 영원히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잡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이 순간밖에 없으므로.

경인년 새 아침에 붉게 솟는 해를 바라보며, 대망의 2010년 새해 새 소망을 기원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추억하며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2011년 신년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추진하는 시행모드로 돌입했다. 다음 해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카르페 디엠! 우리에겐 아직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할 경인년이 한 달 이상이나 남아 있다. 경인년을 보내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 잡아야 할 소중한 일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첫째,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나눔과 봉사의 카르페 디엠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는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 만한 거국적 행사였다. 참석한 나라 중 한 명의 정상만 방문해도 대단할 텐데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움직이는 20개 나라의 의장국이 되어서 정상회의를 주관하는 모습과 TV에 펼쳐지는 각 나라 정상들이 모여 있는 광경만 보아도 우리들은 눈이 부셨고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TV에 펼쳐지는 정상회의 화면 아래로 노인요양원 화재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부끄럽다 못해 가슴이 서늘하지 않았던 국민이 있었겠는가? 눈부신 화면 아래로 경북 포항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노인 10명이 화재로 숨진 참사를 알리는 자막이 아이러니하게 계속 흐르고 있었다.

OECD 선진국 진입을 알리는 축제 뒤에 숨겨진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질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사회적 약자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기보단 오늘의 풍요로움을 더불어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실천함으로써 가장 행복한 오늘을 잡았으면 한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계절이다.

둘째, 내일의 성급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경인년 새해의 계획들을 꼼꼼하게 점검해 보는 마무리의 카르페 디엠이다. 계획은 거창한데 마무리가 정확하지 못한 사람이 세우는 다음 계획은 실천성이 약하며 구호성이 되기 쉽다.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보람도 중요하지만, 미흡한 결과에 대한 원인 분석과 향후 보완책을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적재적소에 제공하지 못해 실기(失期)한 교육은 그 기회를 다시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연명은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이라 하여 젊음은 일생에 두 번 오지 않으며, 아침이 하루 동안에 두 번 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의 면학에 충실하라는 교훈이다. 특히 학생교육활동의 마무리에 있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교육가족에게 전하고 싶다.

셋째, 한 권의 독서를 통한 여유로움의 카르페 디엠이다. 연말이면 누구나 바쁘다는 말을 인사처럼 하고 다닌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연말연시 행사로 인해 공사다망한 시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 해를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읽고 싶었으면서도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는 여유로움을 가졌으면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은 한 해의 마지막 길목을 돌아가게 하면서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줄 것으로 확신한다. 그것은 올해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하며, 다음 해를 행복하게 맞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수행자 틱낫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대지를 밟는 것이고, 이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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