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자 대전시의회 교육위원장

모름지기 하계 올림픽의 꽃은 마지막 날 열리는 마라톤일 것이다. 그중에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마라토너 존 아쿠아리라는 선수의 선전은 감동을 일으켰다. 그는 출발 몇 분 만에 옆 선수와 부딪쳐서 무릎이 찢어지고 정강이뼈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었다. 의료진과 주위 사람들은 더 이상 뛰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는 벌떡 일어나 절뚝거리며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폐막식도 끝나고 경기장 조명도 꺼진 주경기장에 붕대를 감고 피를 흘리며 도착하자 어느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이길 가능성은 없었는데.”

“조국은 나를 출발점에 서라고 보낸 게 아니라 결승점까지 들어오라고 보내 주었습니다.”

존 아쿠아리에게 마라톤은 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지 우승 여부는 별개였을 것이다.

지난달에 30여 년 전 교사 시절에 가르쳤던 제자 K를 만난 일이 있다. K는 매년 스승의 날이 오면 잊지 않고 감사의 전화나 손수 쓴 짤막한 편지를 보내주는 제자 중 하나다. 그런 단발머리 앳된 소녀가 이제는 40대 후반의 중년이 되어서 학창시절 스승을 찾아주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의 밝은 모습이 아니고 약간 수척해 보였는데 아무래도 근심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재수를 하는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란다. 딸이 가고 싶은 대학은 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본인과 부모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모양이다. K는 스승을 모셔서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위로를 드리려고 했는데 어두운 얘기를 했다고 겸연쩍어했다. 같은 어머니로서 나도 겪어봤던 제자의 그 아픔과 고통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 제자에게 성의 없는 위로보다는 어느 책에서 보았던 앞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아픔을 같이하는 것이 나을 듯싶어서 말해준 기억이 있다.

드디어 수험생과 학부모, 그 가족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수능이 다가온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성적발표일이 되면 학생들은 희비 쌍곡선을 그리게 된다. 성적이 원한 만큼 나오기도 하겠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실패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패한 것에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것에 굴하여 주저앉는 사람도 있다. 결과야 어떻게 나오든 간에 K의 딸이 선택한 그 길에 후회 없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아울러 지금이야 수능성적이 내 인생 모든 것을 좌우할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작은 일부분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너른 세상에 수능성적표를 갖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값진 일은 많으며, 실제로 좋은 수능성적 없이도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는 많다.

사랑하는 제자 K야, 그 딸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구나.

푸른 하늘과 너른 바닷가를 마음껏 날고 있는 갈매기 조나단을 아는가. 그도 처음에 알에서 나와서 하늘을 날려고 노력했었단다. 두 날갯죽지에 힘을 주고 날아 보려고 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겠지. 까마득한 벼랑에서 보이는 저 시퍼런 바다로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맞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새끼갈매기는 나는 것을 포기했다.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모습을 보던 경험 많은 어른갈매기가 한마디 했다.

“얘야, 하늘을 나는 것이 그리 쉬울 줄 알았더냐. 우리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백 번, 수천 번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바람에 맞서야 하기도 하고, 바람을 타고 날아야 한다. 우박 한 번 맞지 않고 하늘을 날았던 갈매기가 있는 줄 아느냐?”

강영자<대전시의회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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