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는 2010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이 10점 만점에 5.4점을 얻어 조사 대상 178개국 중 39위에 그쳤다고 밝혔다. 부패인식지수는 한 나라의 공무원, 정치인의 부패 정도에 대한 인식을 점수화한 것으로 우리가 속한 5점대는 절대부패에서 갓 벗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OECD 30개 회원국 평균인 6.97점에도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2년 연속 점수가 하락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 정부의 반부패 의지와 사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지난 7월 발표된 ‘2010년도 OECD 뇌물방지협약 이행보고서’는 한국의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통령 사면과 경영 복귀, 검사 스폰서 사건 등 국내 부패환경 악화를 우려했을 뿐 아니라 한국 검찰의 수사 능력과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공정한 법집행 없이 선진국 진입이 불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연일 터져 나오는 교육비리와 특권층 비리는 물론, 고위 공직자 자녀의 채용비리, 사정기관의 부패 스캔들 등 공적 지위를 남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는 사회 전반의 부패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청렴해야 할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아 챙기고 비리가 들통 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혐의를 부정하기에 급급하다. 국가의식이나 도덕의식 제로인 공복들로 인해 국민적 자긍심은 훼손될 대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비리척결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일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중심무대에 올라선 우리의 국격을 더욱 높이기 위한 여러 사안 중 기본적인 것이며 많은 국민의 바람이다. 경제발전만 가지고서는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 법과 제도를 통한 공공부문의 투명성 제고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선결요건이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과 통제의식이 매우 낮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부정부패를 관행이나 필요악으로 여기는 허용적인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타인과 타 집단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자신과 내 집단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이중적인 가치체계도 부정부패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공서의 민원행정업무 처리의 기준과 절차가 객관적이고 표준화됨으로써 부정이 개입할 소지를 차단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지도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알고 실천할 때 그 사회의 미래가 밝다. 썩은 곳에는 구더기와 파리가 모여드는 것이 세상 이치다. 온갖 부정과 뇌물이 성행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화려한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돈이면 만사가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가 가져다준 부메랑이다. 국민은 공직자가 청렴하고 투명하게 나라살림을 할 때 나라에 ‘세금 뜯긴다’는 생각 대신 ‘내가 낸 세금만큼 돌려받는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공직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나라의 운명과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공정사회도 엄정한 법집행과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부정부패를 털어내지 못하면서 청렴한 선진국이 되는 길은 요원하다.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총체적 점검과 개혁이 필요하다. 정치인을 비롯한 공공부문 종사자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 기준을 확립하고 비리가 발견되면 법의 엄정한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 부패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일은 계속돼야 하지만 그보다는 예방과 근절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패 예방을 위한 국민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 부패행위를 감시하고 방지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확립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부패인식지수가 높아지고 우리 사회가 깨끗이 정화되어 법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비로소 선진사회로 가는 티켓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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