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대형마트가 우리 실생활에 자리잡은 지 1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이 대형마트가 쇼핑의 개념을 바꾸며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점포 정책을 구사하는 대형마트들로 인해 지역상권의 붕괴는 물론 알게 모르게 가격과 품질 면에서도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물품 구입과 고용, 서비스 등 대형마트의 모든 정책이 수도권 위주로 이뤄짐에 따라 지역은 상권 붕괴에 따른 손실 만을 떠안을 뿐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지역의 실익과는 따로 가는 대형마트의 문제점과 소비자 이익을 외면하는 대형마트의 두 얼굴에 대해 시리즈로 살펴본다.

#1. 대전 서구 내동에 사는 김혜진(40·여)씨는 최근 이마트 둔산점에서 자체브랜드 상품으로 판매하는 화장솜을 구입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화장솜 위에 스킨을 떨어뜨렸더니 스킨을 흡수하지 못하고 주루룩 흘러내렸기 때문. 평소 사용하던 제품보다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서 샀지만, 역시 ‘싼 게 비지 떡’이었다. 김씨는 그러나 2000원도 하지 않는 제품의 환불을 요구하기도 귀찮아 그냥 새로 구입했다.

#2. 주부 윤현숙(34)씨는 지난해 홈플러스 유성점에서 자체브랜드 상품으로 구매한 주방 세제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일반 세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구입했으나, 막상 사용해 보니 거품이 잘 나지 않고 제대로 씻기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용량을 늘리자니 환경을 파괴하는 것 같아 찜찜했다. 윤씨는 “싸다고 무조건 구입한 제 잘못”이라며 “자체브랜드 제품이 싸기는 하지만,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경우”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제조업체 브랜드(NB·National Brand) 제품 대신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자체브랜드(PB·Private Brand 혹은 PL·Private Label)상품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올 들어 이물질 혼입에 식중독균·대장균·위해첨가물 등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서 식품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손색없는 품질, 만족스러운 가격’, ‘가계절약을 위해 자체 개발한 브랜드’ 등으로 홍보하며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제품’을,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던 PB제품.

그러나 싼 가격을 앞세운 PB제품의 품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소비자들 고민도 커졌다. ‘가격’과 ‘품질’ 사이의 딜레마가 깊어진 셈이다.

◇이물질 발견 사례, 매년 증가=2008년 이후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PB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경우는 70건이 넘는다. 특히 이물질이 발견되는 경우가 매년 2배 이상씩 증가하고 있어 철저한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물질이 발견된 대형마트의 PB제품은 모두 73건.

이물질 발생 건수도 2008년에는 13건에 그쳤으나 2009년 25건, 올해 상반기 35건으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업체별로는 이마트가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에서 각각 19건이 발견됐으며 GS슈퍼에서도 3건의 PB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대형유통업체가 중·소 제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어 생산하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지만 자칫 저렴한 생산단가를 우선시함에 따라 품질관리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며 “PB제품이 급격히 확산되는 추세임을 감안해 식품당국이 이들 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수거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형마트 브랜드 믿고 샀는데···=식약청은 지난 6월 이마트가 판매하고 늘푸른이 제조한 ‘이마트옥수수맛전분’과 킴스클럽마트가 판매하고 성진식품이 제조한 ‘옥수수전분맛’에 대해 제품 회수 명령과 함께 업체 측에 제조 및 판매업무 금지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 제품에서 이산화황이 기준치의 2배 이상 검출돼 식품첨가물 사용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앞서 5월에는 ‘이마트 튀김가루’에서 쥐의 사체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돼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식약청은 해당 제조업체에 대해 공장 현장실사를 실시한 결과 삼양밀맥스의 공장 내부에서 쥐 배설물이 발견됐으며, 제품에서 발견된 이물질과 같은 종류인 쥐가 공장 냉장창고 쥐덫에 잡혀 죽어 있었다고 밝혔다.

튀김가루 쥐 사건에 이어 이마트가 일본 소지쓰사로부터 수입·판매하는 ‘자숙 냉동가리비살’에서 대장균이 기준에 비해 18배나 검출돼 회수 조치를 받기도 했다.

또 4월에는 롯데쇼핑이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 ‘와이즐렉 프라임 쥐치포’와 ‘이마트 쥐치포’에서 기준치를 넘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돼 회수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대형마트에선 PB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공식적인 해명자료를 내거나 사과는 커녕 제조업체에게만 책임을 떠넘겨 왔다. 대형마트는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판매만을 하고, 제조는 제조업체가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식약청이 PB제품에 대한 책임을 대형마트에 묻기로 했다.

적발이 되더라도 행정처분이 영세한 제조업체에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어서 늘어가는 PB제품에 대한 식품 관련 사고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PB제품, 문제는 유통구조=대형마트에서는 PB제품이 매출증대의 효자로 손꼽힌다.

마트들도 PB제품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경쟁력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PB제품에 관한 품질문제나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PB제품은 동일한 제품을 유통과정을 단순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춘 것일 뿐 품질과는 관계가 없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복수의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대형마트가 이윤을 높이기 위해 제조 원가를 계속 낮춤에 따라 품질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PB제품 판매량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어도 제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 입장에선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생산비용이 올랐음에도 납품 단가 인상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상은커녕 재계약 등을 미끼로 단가 인하를 강요당하기도 일쑤기 때문.

결국 제조업체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단가에 계약을 체결하고 낮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원자재를 사용하다보니 품질이 떨어지면서 피해는 제조업체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대전지역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PB제품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하고는 소비자의 몫”이라며 “저렴하고 품질 좋은 PB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NB제품 보다 저렴한 PB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PB제품의 확대는 중소기업의 경영악화까지 불러오고 있다.

2008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PB제품 납품업체의 상당수가 원가부담에 허덕이고 있었다.

PB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78.8%는 ‘납품가격이 적정하지 못하다’고 답했고, PB제품 확대의 단점으로는 ‘저가납품으로 원가부담 가중’(38.6%)과 ‘자사 브랜드 포기로 자생력 약화’(24.2%) 등을 꼽았다.

업체들은 특히 자생력 약화를 가장 우려했다. 유통업체 PB제품 제작으로 안정적 판로를 찾으려 했던 중소기업들이 결국 자사 브랜드가 없어지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반면, 유통업체는 PB제품으로 제조업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같은 중소기업들의 경영악화는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전중소기업지원센터 관계자는 “소비자 가격을 정할 때 대형마트와 납품업체가 협의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시스템이 절실하다”며 “단위 및 월 생산 확정 계약을 통해 지속적인 거래관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종구 기자 sunfl19@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롯데햄이 제조한 PB 제품과 NB제품. PB제품에는 돼지고기 함량이 82.76%인 반면 NB제품은 돼지고기 함량이 84.95%였다.
(주)롯데햄이 제조한 PB 제품과 NB제품. PB제품에는 돼지고기 함량이 82.76%인 반면 NB제품은 돼지고기 함량이 84.95%였다.
연세우유에서 제조한 PB제품 ‘홈플러스 우유’(200㎖, 500㎖, 1000㎖)와 NB제품인 연세우유(1000㎖). PB제품은 200㎖와 500㎖는 1A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1000㎖는 1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있다. 연세우유는 자사의 NB제품도 1A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있다.
연세우유에서 제조한 PB제품 ‘홈플러스 우유’(200㎖, 500㎖, 1000㎖)와 NB제품인 연세우유(1000㎖). PB제품은 200㎖와 500㎖는 1A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1000㎖는 1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있다. 연세우유는 자사의 NB제품도 1A등급 원유를 사용하고 있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