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오는 11일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우리의 국격이 그만큼 높아졌고, 경제적 사회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면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가 여실히 증명되는 행사이므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크게 환영해 마지않는다.

이러한 G20 정상회의를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과학기술과 연관시켜 보고 싶다. G20에 포함된 국가는 선진국들로 구성됐던 G7 또는 러시아를 포함한 G8 국가에 한국을 비롯한 중국·인도·브라질·아르헨티나 등 12개 신흥 개발국가들이 포함된 정상회의다. 세계 각국의 국가별 GDP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서 상위 20개국이 포함된 형태이다. 대한민국이 G20에 포함됐고 이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히 세계 20위권에 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학기술도 세계 20위권에 들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초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GDP 대비 R&D 투자비의 경우 2008년 3.37%로 스웨덴(3.6%), 핀란드(3.46%), 일본(3.44%) 등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과학기술 분야 논문 수 역시 2008년도에 3만5569편으로 세계 12위 수준이며, 과학기술경쟁력(IMD) 수준도 지난해 과학경쟁력 세계 3위, 기술경쟁력 세계 14위 수준인 것으로 추산됐다. 더욱이 정부는 올해 13조7000억 원 수준이었던 R&D 투자를 2011년 14조9000억 원으로 확대했고, 2012년에는 16조6000억 원으로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과 관련된 각종 지표상으로 볼 때 우리의 과학기술은 G20 국가 중 상위권에 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가름하는 몇 가지 지표 중에는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 유무도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현재 G20 정상회의에 포함된 국가 중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국가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멕시코·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터키 등 6개국이다. 이들 6개국은 경제 규모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크거나 비슷한 수준이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들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R&D 투자비, 논문 수 등 대부분의 측면에서 이들 국가보다는 다소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들과 함께 G20 국가 중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6개국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다른 5개국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으면서도 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혹시 그간 우리가 추진해 온 과학기술 정책이나 과학기술 연구비 투자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연구기관의 운영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물론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 여부가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자존심을 짓누르는 족쇄이며,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 온 과학기술 정책이 잘못됐었다고 당당히 지적할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과학기술 분야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단기간에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며, 어쩌면 일본처럼 2050년까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30명 이상을 배출하겠다는 식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 프로젝트를 별도로 추진해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은 목표가 아니라 열정적인 연구 결과에 따른 부상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훌륭한 과학기술 정책은 실력 있고 강한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에서만 수립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개편하여 행정실무 위원회로 만드는 강력한 대한민국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를 구상하였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등 매우 이례적이고 환영할 만한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도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하나 법 통과가 유동적이어서 과학기술계의 염원이 또다시 정치적 논리로 무산될까 큰 걱정이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대한민국이 경제·정치·문화적 측면에서 세계를 주도해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과학자들도 올바른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기초과학 분야 투자, 노벨상 수상자 배출 등을 통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세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무대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박준택<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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