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레길을 걸어보자

단풍잎이 유난히 아름다운 가을이 돌아왔다. 산과 들녘은 단풍잎으로 붉게 물들었다. 요즘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산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곤 한다. 우리나라 산은 사계절이 아름답다. 늘 아름다운 산을 보아 온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외국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된다. 외국에는 황폐한 산에 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산이 있는가 하면, 숲이 울창해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산이 많다. 개발도상국의 산은 무자비한 벌목으로 인해 황폐해진 곳도 많다.

북한의 산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단동지방을 갔을 때 멀리 보이는 북녘의 산은 나무가 몇 그루 보이지 않았다. 농작물을 심고 땔나무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고 산을 개간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매년 홍수 피해를 입는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도 수십 년 전만 해도 매우 헐벗었다. 땔나무를 베어낸 산은 누렇게 변했었다. 다행히도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산림녹화 운동을 벌였다. 60년대 후반부터 꾸준하게 나무를 심은 결과 이제는 숲이 매우 우거졌다. 그 산에는 자취를 감추었던 짐승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새들과 짐승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고 있다. 우리는 산림녹화 운동을 벌이며 숲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한 번 헐벗은 산을 원래대로 되돌리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산과 들녘이 또 다른 요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소득 수준이 높아진 국민들 사이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산을 찾는 열풍이 불고 있다. 주말만 되면 전국 유명산은 등산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각종 쓰레기들을 수거해 온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쓰레기들을 산 구석에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먹다 남은 각종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 음식물 쓰리기를 먹은 동물들이 병을 앓는다. 그리고 산에서는 썩은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난다. 국립공원은 관리인들을 두고 산을 관리하지만 일반 산은 그대로 방치된다. 산 주인이 있다 해도 그 많은 쓰레기를 치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언제부터인가 산나물, 약초, 버섯 등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도 산림을 훼손하는 한 요인이 된다. 그들은 산에 길이 없는 곳을 다니며 약초 등을 캔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린다. 일반 등산로 같으면 수거가 되지만 길이 없는 곳에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는 수거하기가 힘들다. 약초를 캐기 위해 땅을 파헤치는 것도 문제다. 파헤친 땅을 원상대로 복구해 놓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난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 둘레길은 얼마 전 텔레비전에 방송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할 때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든 나는 길에 버려진 휴지나 빈병을 하나하나 주우며 여유롭게 걸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시골길은 참으로 정겨웠다. 숲속 소나무 길을 걸을 때는 무릉도원에 온 듯했다. 길 옆 저수지를 지날 때는 고향 동네 조그마한 물웅덩이가 생각났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풍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도 그곳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어귀에 있는 농산물도 수난을 겪고 있었다. 무가 잘려져 있고 배추가 구멍 난 채 쓰러져 있었다. 한 농부는 제발 좀 둘레길이 없어졌으면 하고 푸념을 했다. 그리고 차라리 농산물을 캐가지 저렇게 먹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하소연을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둘레길을 걸으며 그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둘레길도 걸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가야 한다.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이란 남을 배려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둘레길을 걷고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그 지나는 길에 사람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 줘야 한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정직하게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들!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 좋아하는 둘레길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산에 있는 들짐승이나 날짐승들에게도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산림을 가꾸며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인들이 자연과 호흡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일 것이다.

정순훈<배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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