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工程)’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영어로 이야기하면 프로젝트(project) 정도로 해석이 되고 우리말로 하면 ‘작업’이나 ‘계획’ 정도가 아닐까. 생소했던 말이지만, 어느 사이엔가 언론이나 주변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변했다. 몇 년 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시작이다.

아시다시피 동북공정은 중국이, 동북 3성 지역이 역사와 문화적으로 자국의 영역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한 국책사업이다. 공식적으로는 지난 2002년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다.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 연구 프로젝트가 아니라 치열한 정치적 계산하에 진행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소수민족 문제나 소수민족 중심의 지역주의를 중앙으로 통합하고 국가의 안정화를 강화했다.

최근 언론에는 중국이 ‘한글공정’에 나섰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 등 우리 역사를 왜곡한 중국이 이번에는 조선동포가 사용하고 있는 조선어를 자국의 언어로 규정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첨단 정보기기에 한글표기방식의 국제표준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한글판이다.

중국 정부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의견을 수렴해 표준을 만들기로 하고 국제 협력까지 제안한 상황이라고 한다. 자국 내 수많은 소수민족 언어에 대해 표준을 정립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대의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는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내놓은 표준안이 상정되고 확정될 경우에 벌어질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앞으로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통의학과 관련해서는 ‘중의학 공정’이 떠오른다. 중의학은 중국의 전통의학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이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하자 중의학의 세계화를 내세워 해외에 중의학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의학과 한의학의 관계를 ‘중의학이 뿌리라면 한의학은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가지’로 비유하며 한의학은 중의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자신에게서 파생되었으니 자신의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의학 체계는 어느 한 지역에서 발원하여 특정 지역으로 흘러들어 갔다기보다는 상호간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각국의 전통의학 체계는 유사한 면과 차이점이 상존한다. 한의학과 중의학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보듬어 준 향약이나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 등은 중국의 의학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당연히 이웃 일본이나 베트남, 몽골 등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에서 역시 이런 중국의 태도에 반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중의학 공정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계 전통의학시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20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고 있다. 중의학 공정의 이면에는 중국의 전통의학시장 선점을 위한 사전포석이 있다.

중국은 최근 침과 뜸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물론 지난해 우리 연구원이 주도해 쾌거를 이룬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큰 자극을 받은 때문이다. 중국은 침뜸에 이어 이론과 양생, 심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인당과 같이 전통의학 관련 다양한 유산을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국 내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조선족의 의학인 한의학마저 자신들의 전통의학에 포함시키고 있다. 최종 목표는 세계시장 선점의 도구인 중의학(TCM)의 국제표준화로 맞춰져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이제는 우리도 ‘공정’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부와 온 국민이 나선다면 하지 못할 것도 없다. 우리 정부와 한의학계도 한의학과 중의학의 관계를 정립하고 우리 전통의학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정책과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한의계는 한의학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한의학의 세계화를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한의학이 중의학의 아류라는 일부분의 오해를 떨치고 많은 시간 동안 한민족이 독자성을 가지고 발달한 의학이라는 점을 국내외 전문가들이 인정한 쾌거이다. 동의보감을 내놓은 허준 선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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