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나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흔히들 자녀에 대해 얘기할 때 제일 관심사가 되는 것이 학과 성적에 관련된 것이고, 어떤 학교에 진학했는지 어떤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가 자녀 양육 성공의 지표가 되어 버렸다. 그 집 아이가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영락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바쁘게 하던 일을 접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왜 일을 하고 공부하고 성공하기를 열망하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필자가 생각해 볼 때 행복하게 살려고 이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돈, 명예, 성공, 사랑, 믿음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일 것이다. 건강이 없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사상누각이 되니까 말이다.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외부병원체의 침입이 있어야만 육체의 병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세균을 비롯한 외부 요인의 인체 내부 침입에 의한 발병 외에도 정신적, 심리적 상태가 발병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동양 전통사회에서 주로 활용되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격언이 그 의학적 실체를 다시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이라도 하듯 세계보건기구는 정신적 건강, 육체적 건강, 사회적 건강으로 규정되어 있던 기존 건강에 대한 주요 관점 외에 영적 건강을 새로이 추가하였다. 이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영혼의 깊이가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처음 필자가 음악치료를 공부할 때만 해도 생소했던 탓에 사람의 어떤 정신적 증상에 과연 어떤 음악이 효과가 있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음악은 인간의 신체적(physical), 감정적(emotional), 정신적(mental)인 면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음악은 정서적이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성장의 원천으로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먼저 음악에 대한 신체적 반응은, 최근 대뇌생리학에서 연구 발표한 음악의 작용을 보면 그 영향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음으로써 맥박이 촉진될 뿐만 아니라 심장이나 위 등의 순환기나 소화기 계통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음악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으며, 생리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작용이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음악은 구체적으로 혈압, 맥박의 속도, 호흡, 피부 반응, 뇌파, 근육운동 등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도록 하며 심리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활발한 음악적 자극은 대뇌 피질의 더 많은 영역을 자극시켜 사고력을 향상시키며, 호르몬 체계에도 영향을 주어 호르몬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면역 체계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가 음악치료를 한 사례 중에 인상 깊은 경우를 소개하면 학교에서 공격성이 심해 자주 반 친구들에게 주먹다짐을 하고, 선생님에게까지 심한 욕설과 자해행동으로 멍 자국이 가득했던 중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에게 타악기를 통한 즉흥연주로 분노와 증오심을 배출시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경우가 있었다. 그 아이의 경우, 환경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핵심 문제는 자신과 의사소통할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음악이 그 아이의 출구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예술 관련 정신활동은 영적 건강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훌륭한 예술 활동은 그것이 능동적인 것이든, 수동적인 것이든 영적 성장에 기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예술에 대한 욕망이나 잠재력, 즉 예술혼은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되고 개발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억제되면 병이 되고, 발현되면 성장과 치유에 도움이 된다. 전문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예술 활동 자체는, 작게는 정서함양 차원에, 크게는 영적 건강의 깊이를 더해 주어 종래는 인간의 전인적 건강을 지지해 주는 중요한 치료활동이 되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랑하는 자녀가 과연 건강한지, 마음의 병이 들어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고 삶이 팍팍하다고 하면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고 진솔한 얘기를 나눠 보는 것이 어떨지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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