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좌절 끝 2007년 착공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새 행정수도 건설을 다룬 대전일보 기사. 1977년 2월 13일자.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새 행정수도 건설을 다룬 대전일보 기사. 1977년 2월 13일자.
중앙정부 대전 또는 충청권 이전론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대전일보 1951년 3월 15일자에 처음 이 문제가 거론된 이래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싸고 갈등을 빚었던 올해까지 60년에 이른다. 대전일보 60년의 지면 곳곳에는 천도 관련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51년 11월 국회에서 대전 천도 건의안이 통과되자 대전일보는 함재준 종군기자를 부산에 특파했다. 함 기자는 일부 의원과 피란민들은 수도 이전을 찬성하지만 정부 관계자들과 부산의 경제계는 적극 반대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사설을 통해 “천도는 현 정세에서 불가피한, 당연한 순서”라며 “부산에서 대전으로 이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승리를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전 천도론은 이승만 정부가 계속 부산에서 있다가 1953년 8월 서울로 환도하며 무산됐다.

대전 수도론은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등장한다. 신민당 대선후보로 나선 김대중은 10월 22일 대전에서 처음 유세를 시작하면서 “대전을 점진적으로 행정수도로 이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남한의 심장부인 대전을 국방·경제·사회·문화의 등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행정수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대전을 중심으로 한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을 공약했다.

대전(충청) 수도론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계획이 수립된다. 박 대통령은 1977년 2월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해 수도이전을 검토해왔다고 밝혔다. ‘백지계획’으로 명명된 이 사업은 천안과 대전 사이 공주시 장기면 일대를 후보지로 결정했다. 당시 대전일보는 며칠에 걸쳐 대대적으로 심층보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1979년 박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중단됐다.

오랜 세월 지지부진했던 이 사업은 2002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의해 점화된다. 노 후보는 9월 30일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법을 제정하고 부지를 매입하는 등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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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대전 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보도한 대전일보 1970년 10월 24일자 기사.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대전 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보도한 대전일보 1970년 10월 2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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