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뒤져 인쇄기 발견 폐허속 신문 발행은 기적”

1950년 대전일보 창간 당시를 회고하는 송용기 옹.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1950년 대전일보 창간 당시를 회고하는 송용기 옹.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대전일보 창간은 기적에 가까웠다. 폭격으로 불타 없어진 동방신문사 잿더미를 뒤져 인쇄기를 찾아냈다. 다행히 쇠붙이라 불에 타지 않아 신문을 찍을 정도로 기계를 조립할 수 있었다.”

대전일보 창간 멤버로 생존해있는 인물을 찾아냈다.

대전시 동구 판암동에 거주하는 송용기씨(92)는 창간 때 인쇄 기술자로 실무를 담당했다.

송씨는 당시의 어려움을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대전시내가 모두 파괴돼 성한 건물이 하나 없었다. 그런 폐허에서 신문을 만든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전시하 언론이 절실하다는 입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송씨는 일제시대 19살때 대전에서 발행된 호남신문에서 신문밥을 먹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인쇄 전문가로 동방신문에서 일했다.

“대전일보가 충남도청 앞 승리당 건물에 세를 들어 있었는데 1층에는 공무국이 있고, 기자와 영업부는 2층에서 근무했다. 전쟁 중이라 매일 거리로 나가 호외라고 소리치며 신문을 팔았다.”

당시 열악한 인쇄시설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일제 인쇄기였는 데 납활자로 조판을 하고 평판 위에 종이를 놓은 상태에서 기계를 발로 밟아 한부 한부 인쇄했다. 대량으로 자동 인쇄되는 원통형 윤전기는 한참 뒤에 나왔다.”

그는 1.4후퇴 당시 혼란스런 상황에 대해 “직원들끼리 대구로 피란을 할까? 부산으로 피란해야 할까?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신문을 만들었다”고 기억했다.

송씨는 대전일보 공무국장으로 70년대 중반까지 근무했다.

“신문사에서 평생을 보냈다. 지금도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을 ‘신문사 집’이라고 부른다.”

<김재근>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