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대전 언론계

대전의 대표 언론인이었던 곽철수 동방신문 사장을 죽인 좌익 이돌쇠 검거 관련 기사. 대전일보 1955년 6월 5일자.
대전의 대표 언론인이었던 곽철수 동방신문 사장을 죽인 좌익 이돌쇠 검거 관련 기사. 대전일보 1955년 6월 5일자.
6.25 전쟁은 지역 언론계에 엄청난 희생과 변화를 초래했다. 신문과 방송, 통신사 기능이 마비되고 언론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속속 피란길에 올랐다.

잠깐 해방공간에서 6.25전쟁 발발까지 충청권 신문업계를 살펴보자.

해방 직후 충남에서 중선일보(中鮮日報)가 제일 먼저 한글로 발간됐는 데 한때 좌익이 접수하여 중앙일보, 인민보라는 제호로 신문을 발행했다. 미 군정이 행정과 치안을 장악하자 좌익을 몰아내고 중선일보 시설을 환수, 제호를 동방신문(東邦新聞)으로 바꾸고 1945년 9월 20일부터 곽철수로 하여금 사장을 맡게 했다.

온양에서는 경남신보(京南新報)라는 주간신문이 46년 7월 선보였다가 이듬해 폐간됐다. 49년 12월 대전에서 만년장 사장 권서정이 호서신문(湖西新聞)이라는 주간지를, 이진락 임병식 등이 충청매일(忠淸每日)이라는 일간신문을 발행했다. 청주에서는 46년 3월1일 국민일보라는 일간지가 창간됐다.

충청권에서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대전의 동방신문과 청주의 국민일보가 꾸준히 발행되며 언론 역할을 수행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 적군이 밀고내려오자 지역 언론인도 대부분 남행길에 올랐다. 동방신문은 7월 20일 미군 24사단 퇴각과 함께 발행을 중단했고, 충청매일과 호서신문도 피란길에 올랐다. 동방신문과 중앙지 대전주재 기자로 일했던 인사들도 가족들과 함께 대전을 떠났다.

피란을 하지 않고 대전에 남아있던 동방신문 곽철수 사장은 공산 집단에 의해 희생됐다. 곽 사장은 적치하 좌익 분자인 이돌쇠에게 붙잡혀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동방신문도 폭격으로 완전 소실됐다. 충청매일 사옥과 인쇄시설도 모두 불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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