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혁신 무장 ‘기업가정신 바이러스’ 고루 퍼져야"

안철수 KAIST 교수는 대전일보 창간 60주년 인터뷰를 통해 기업가 정신,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상생을 역설했다. <사진제공=안철수연구소>
안철수 KAIST 교수는 대전일보 창간 60주년 인터뷰를 통해 기업가 정신,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상생을 역설했다. <사진제공=안철수연구소>
의사·의대 교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벤처기업 CEO, 그리고 KAIST 교수. KAIST 안철수 석좌교수(48·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경력이다.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로 불리지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대전일보는 창간 6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와 기업에 ‘영혼있는 승부’를 바이러스처럼 확산시키고 있는 안 교수의 기업가 정신, 도전 정신을 들어봤다. 대전·충청지역을 포함, 중부권 언론에서 안 교수를 인터뷰한 것은 대전일보가 처음이다.

안철수 교수는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하루 뒤 안철수연구소를 통해 연락이 왔다. 질문지를 보내달라고. 그가 받은 메일은 하루 300건이 넘는다. 연구소를 통해 꼭 필요한 메일만 전달되지만 모든 답변은 안 교수가 직접 작성한다. 모든 질문에 안 교수는 평균 500-600자의 답변을 보내왔다. 8000자에 달하는 분량이다. 특히 벤처기업의 환경과 미래를 묻는 질문에는 답변 내용이 1500자가 넘었다.

안 교수는 각종 강연 등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기업가 정신의 본질은 도전과 혁신이다. 그는 여기에 3가지를 더 보냈다.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급변하는 트랜드를 앞서서 읽은 통찰력. 특히 통찰력에 방점을 찍었다.

“통찰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통찰은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숱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듭하며 자기가 창업한 애플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 경험을 쌓다보니 통찰력이 생기고, 다시 애플로 복귀한 뒤 꽃을 피운 것입니다.”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방학 동안 미국에서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무엇을 하며 지내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로 계속 미루어둔 책을 틈틈이 집필하고, 가을 학기에 새로운 과목을 개설할 예정이어서 이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평소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많이 강조하셨는데요. 기업가와 경영자의 차이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하셨구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은 무엇입니까?

“현상유지의 수준을 뛰어넘어 위험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기업가정신의 핵심입니다. 또한 기업가정신은 마음가짐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치 리더로서의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지만 나서지 않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기업가정신’이라는 번역보다는 ‘가치창조활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래의entrepreneurship의 뜻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도전과 혁신의 정신입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첫째, 사회적 책임의식, 둘째,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셋째,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서 읽는 통찰력 또는 비전입니다.

이때의 통찰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느리고 지루하고 점진적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진정한 의미의 통찰은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숱한 고민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탄생하는 산물인 것입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러한 진화 과정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듭하여 자기가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 여러 경험을 쌓다 보니 통찰력이 생기고, 다시 애플로 복귀한 뒤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가들만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젊은 학생들에게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기업가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열악한 환경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실패’가 통용되지 않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흔히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의 요람’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라는데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100개의 기업 중 하나만 성공하고 99개의 기업이 망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다시 기회를 줍니다. 다시 기회를 부여 받은 기업가는 예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게 되어 점차 성공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또한 처음 시작하는 기업가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 기업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 기업들에 대한 처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밝은 면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면에 대한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해도,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뛰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중의 하나로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빚을 얻을 때, 또는 심지어는 투자를 받을 때도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서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대보증을 선다는 것은 기업이 망할 경우에는 기업의 빚이 모두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냉정하게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기업을 계속 무리하게 끌고 나가게 되고, 손해가 나는 사업도 선금만 받을 수 있다면 뛰어들어서 산업 전반적으로 공정가격을 무너트리는 주범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공공과 민간부문에 만연해있는 소위 눈먼 돈은 망해야 할 기업의 수명을 연장시켜 줌으로써 사태를 더욱 더 악화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한 기업만 위기상황에 처해있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건강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망해가는 기업이 계속 덤핑을 해서 공정가격을 무너트리다 보면, 결국 다른 기업들까지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좀비 경제(zombie economy)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무리 중에 좀비가 하나였지만, 이 좀비가 다른 건강한 사람을 물어서 좀비로 만들고, 결국에는 모두 좀비만 남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무리한 덤핑으로 전 산업을 무너트린 기업도 결국 망하게 되고, 대표이사는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진 금융사법으로 전락하게 되어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폐해를 알면서도 없애거나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입니다. 어떤 제도를 완화하면 악용하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규제를 철폐할 때는 동시에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감시를 강화하고,일종의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을 도입하는 것이지요. 머니 게임하는 사람들이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사기를 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리고 `잡힐 확률은 얼마이고 만약 잡힌다면 얼마나 손해를 볼까?` 입니다. 지금은 잡힐 확률도 낮고, 처벌도 낮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만약 감시 기능을 강화해서 악용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잡아내고, 한번 잡히면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일벌 백개하는 징벌적인 배상 제도를 도입한다면 부작용을 많이 줄일 수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전에는 정부출연 연구소, 민간연구소, 벤처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대덕특구가 있습니다. 대덕특구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자는 구호도 한때 유행했구요. 하지만 실리콘밸리와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있는게 현실입니다. 과연 대덕특구를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만들기 위한 방안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대덕특구도 한국의 경제구조의 한 부분이니만큼, 경제구조에 문제점이 있을 때는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실패에 대한 처리방법 때문에 창업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기도 하지만, 일단 창업한 기업들도 대기업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에 성공확률 자체가 낮은 작금의 상황하에서는, 대덕특구뿐만 아니라 국내 어느 곳도 실리콘밸리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선은 국가전체적으로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이 지나치게 낮은 점에 대한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을 도출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시급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덕특구에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들도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서면 서울로 떠납니다. 대전뿐 아니라 전국의 상황이 모두 비슷할텐데요. 지방의 벤처기업이 지방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예전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처음 창업하는 기업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한 지역에 모여있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이 다른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보면 조직 관리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때문에 창업의 리스크가 더 커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IT 기술과 경영기법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처음 시작부터 기획과 마케팅은 실리콘밸리에서 하지만 개발은 인도에서 하는 회사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 연계하면서 대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최근 미국에서는 지역 비즈니스를 인터넷과 접목하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비즈니스와 전자 상거래가 규모가 크다고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전자 상거래에 쓰는 돈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소비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인미답의 영역에 대한 고민도 지역경제내 여러 영역간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관련된 질문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세종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서울과 지방의 비대칭 구조와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지방이 고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사회가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서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시장경제 논리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거대담론 수준에서 그칠까 우려되지만, 중앙정부의 장기적인 시각에 기반한 정책과 지방정부의 창의적인 노력,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열쇠이겠습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대기업은 당황한 기색이고 중소기업은 반색하고 있는데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안 교수님도 이미 오래 전부터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람직한 상생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대기업 경영진이나 오너의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전한 중소기업 파트너는 대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혁신의 90%가 중소기업에서 나오고 대기업에서는 10%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보더라도 그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인 만큼, 대기업 경영진의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창업지원이나 상생펀드처럼 눈 앞에 보이는 것보다는, 정부에서는 대기업·공공기관과 중소기업·벤처기업간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고치려는 진정성있는 노력이 필요하고, 대기업/공공기관에서는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담당자나 담당임원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국가적인 과제이며 대기업 CEO까지 상생을 외치더라도, 대기업의 담당자나 임원은 단기적인 성과로만 평가 받게 되면 중소기업보다는 자기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기 마련이니까요. 언론에서도 정부의 감시기능과 대기업의 인사평가제도가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현장에서 진정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활성화되고 국가 경쟁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어떤 부분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합니까?

“우리나라 산업 경제 구조 하에서 벤처들이 `정말` 잘 되어야만 합니다. 그 이유가 세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경제의 포트폴리오로서의 역할이지요. 주식 투자할 때 한 분야에만 투자하면 위험도가 커서 분산 투자하는 것이 포트폴리오 투자인 것처럼 국가 경제에서도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다 IMF 환란때 취약했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대기업 군뿐만 아니라 다른 한 축으로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이 건실하게 성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두 축이 미래의 다양한 리스크에도 국가경제를 받쳐줄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용 문제입니다. 대기업에서 고용할 수 있는 인력은 전 국민 중 150만 명 정도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중소기업이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고용창출은 대기업 지원이 아니라 중소기업 발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대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에 직결됩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부족한 혁신을 제공함은 물론이며, 중소기업을 통해 육성된 건전한 중산층은 대기업 제품의 소비자로서 튼튼한 시장을 제공해줍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잘 생겨나지도 않고 일단 생겨나도 실패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중소기업의 실패확률이 높은 데는 세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은 남을 탓하기 전에 중소기업 경영진 스스로가 아직도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둘째로는 중소기업을도와주는 사회적인 지원체제들이 튼튼해야 하는데, 아직은 취약한 실정입니다. 예를 들면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투자를 하는 벤처 캐피탈, 자금을 대여해주는 금융권, 다양한 분야의 아웃소싱 업체들, 거기에 정부 정책까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형편입니다. 셋째로는 대기업/공공기관들이 중소기업·벤처기업들의 이익을 빼앗아 가버리는 불공정한 산업 구조가 존재합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것은 오래된 문제이며, 공공기관이나 정부 조달 쪽에서도 이러한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기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관행을 이용하여 대기업을 통해서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개선되어야만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며, 미래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KAIST 교수 이전에도 젊은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많으셨을텐데요.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주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종의 조언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매 학기 50명 정도 됩니다. 토론식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학생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종강 때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면서어떤 조언이 도움이 될까 생각해서 마지막 시간에 이야기를 해줍니다. 몇 학기동안 이야기한 것 중 공통된 몇 가지만 소개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항상 읽을 것을 가지고 다니라는 겁니다. 옛날 직장의 엘리베이터 수가 부족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5분, 10분 정도 되었는데 그 시간에 읽으려고 책을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서 굉장히 많은 양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루 중 자투리(?)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저는 항상 메모를 합니다. 잠을 자다가, 목욕을 하다가, 운전을 하다가도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모지에 적습니다. 아이디어는휘발성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담을 수 있는 보조기억장치가 메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적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10kg이 넘더군요. 제 고민의 무게인 셈입니다. 셋째,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지나보면 급한 일은 다 했는데 정작 중요한 일을 하나도 못한 인생이 되면 안되겠지요. 넷째, 어떤 일에 노력한 만큼 그 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화원에 예쁜 꽃이 많지만 자기가 물을 주고 정성을 들인 꽃이 더 예뻐 보이는 법입니다. 다섯째,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마지막 인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헤어질 때의 모습에서 그 사람의 본질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를 용서하라는 겁니다. 실수는 당연합니다. 너무 실망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자기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스마트폰과 테블릿PC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기업들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습니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합니까?

“아이폰이 주는 여러 가지 교훈 중 대표적인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첫째,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에 국내에서는 바로 도입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출시를 막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커다란 흐름을 막고 있었기에 오히려 뒤늦게 온 충격파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사실 기득권이 보호되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다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보호되면 결국 기득권에도 독으로 돌아옵니다.경쟁력이 없어져 오히려 스스로 파멸하게 됩니다. 기득권이 무조건 보호되는 환경은 기득권에도 결코 좋지 못하고 독이 된다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 대기업들은 명심해야할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폰은 전화기로만 보기보다는 생태계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봐야만 합니다. 다른 분야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여러 가지 기술의 융합과 수평적 상거래 관행이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갑을관계`로대표되는 수직적인 효율화 비즈니스모델에 익숙해 있는데, 외국의 수평적인 네트웍 비즈니스모델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상거래관행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대덕특구의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연구원이나 벤처기업인들을 만나면 ‘미래의 먹거리’를 많이 고민합니다. 안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실 웬만큼 전망 있는 분야들은 이미 외국에서 거대한 투자가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분야나 그린 분야는 장기간 많은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어서 장기적으로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IT 분야도 애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전체적인 흐름들이 플랫폼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단품 하나만 잘되면 되거나, 또는 안되더라도 다른 분야에 영향이 없는 그런 수준을 넘어 이제는 플랫폼 확보와 독점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폰의 경우 휴대폰, MP3 플레이어, 거기에 소프트웨어, 컨텐츠, 마켓 플레이스까지 전체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큰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균형적으로 골고루 발전한 산업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수평적인 상거래 관행에 기반한 튼튼하고 건강한 중소기업, 중견기업들이 존재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기반 하에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안 교수님께서는 주로 어떤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시는지요. 또 이곳의 팔로워나 친구 들과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합니다.

“모두 이미 초창기부터 사용하고 있지만, 제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 제 생각을 전파하는 용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도 KAIST 교수로 계시고, 대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셨는데요. 대전과 대전사람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또 엉뚱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생활공간을 아예 대전으로 옮기실 계획은 없는지요.

“2년 반 전에 귀국하면서 KAIST에 발령받자마자 바로 대전으로 이사하고 저와 아내 모두 주민등록도 대전으로 옮겼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대전 시민입니다.”

-사람들은 안교수님이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안교수님은 여전히 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교수님의 꿈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는지요.

“제가 앞으로 다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의사를 그만둘 때 깨달았던 점은, 저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덧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아버지처럼 의사로 살 줄 알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살다 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CEO를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의미가 크고, 더 재미있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맞게 될지 또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치 않을 것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간에, 그 순간에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고, 잘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끝으로 대전충청 지역민들에게 보내는 인사의 말씀과 간단한 대전일보 창간 60주년 축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창간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우리 사회의 고쳐야 할 점 중의 하나가 흑백 논리의 팽배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흑 아니면 백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여류작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한 인상 깊은 말 중의 하나가 균형감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양극의 중앙점에 서서 가만히 있는 것이 균형 감각이 아니다. 균형 감각이란 양극 간을 오가면서 나름대로 장단점을 파악한 다음, 최적점을 찾아가려는 끊임없는 과정이다.`라고 했지요. 즉 균형 감각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고, 항상 주위 상황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균형점도 항상 바뀌게 마련이란 말입니다. 또한 양쪽 입장 모두 잘 이해한 상황에서만이 제대로 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대전일보도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계속 균형 잡힌 시각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견지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정리=김형석 기자 blade3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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