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

사진=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사진=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백제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기들은 완함(阮咸), 거문고, 장소(長簫), 북, 배소(排簫 ) 등이 있다. 이러한 백제악기들은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金銅龍鳳蓬萊山香爐)에서 다섯 사람이 연주하는 모습에서 확인된다. 이 5종의 백제악기 중에서 완함, 거문고, 장소는 모두가 연대적으로 앞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므로 고구려에서 백제로 전래된 악기로 추정된다.

5종의 백제악기 이외에 비파(琵琶)가 비암사(碑巖寺)의 석상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완함은 백제사회에서 더 이상 연주되지 않았고 나중에 비파로 바뀐 듯하다. 그리고 지금의 동소(洞簫)처럼 생긴 장소와 팬파이프(panpipe) 모양의 배소는 모두 비암사의 석상에서도 보이는 점으로 보아서 백제사회에서 널리 연주된 관악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향로의 북은 땅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특이한 연주형태의 타악기인데, 그 북은 완함, 거문고, 장소, 배소로 구성된 관현합주의 리듬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 외에 대전 월평동 유적에서는 가야금의 양이두가 출토되어 백제악기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사진의 양이두는 1944년과 1955년에 걸쳐 대전 월평동에서 발견된 8공의 양이두이다. 양이두가 출토된 월평동 유적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군사 방어용의 관방유적으로 지하창고인 목곽고(木槨庫)에서 양이두를 비롯한 나무로 만든 그릇, 숟가락, 말안장틀 등 다량의 목기와 목제도구, 구슬 등이 발견되었으며,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약 6세기부터 7세기로 추정된다.

양이두는 가야금의 아래 끝에 열두 개의 구멍을 뚫고 부들을 잡아매는 곳으로 양의 귀처럼 양쪽으로 비쭉 나왔다해 그렇게 부르는데, 월평동 양이두는 8개의 구멍 중 양쪽 끝 구멍이 약간 아래로 처져 있으며 나머지 6공은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8공의 간격은 거의 2cm 정도로 비교적 균등하다. 높이는 9.2cm, 가로 폭은 28cm 정도이다. 사진의 X-ray 촬영 결과 가야금 몸통에 끼워 맞출 수 있도록 내부가 비어 있다.

또한 앞뒷면의 표면을 가로방향으로 예리한 금속성의 칼과 같은 것으로 다듬어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쪽으로 갈라진 귀부분의 안쪽은 끌과 같은 것으로 거칠게 파내었다. 이러한 제작형태는 광주 신창동의 현악기와 하남 이성산성 출토 요고에서도 확인된다. 월평동의 양이두는 모두 8개의 구멍이 뚫려진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가 신라 가야금의 것과 유사한데, 신라 가야금의 양이두가 좌우대칭으로 비교적 정확하고 세련되게 가공한 점으로 보아 월평동의 양이두보다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전 월평동에서 발견된 양이두는 비록 몸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자체로 한국고대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김수영 기자 swimk@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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