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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충청유물 찾아서-무령왕릉 중국 도자기

2010-08-02 기사
편집 2010-08-01 06:00:00

 

대전일보 > 문화 >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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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속 백제 위상 재확인

첨부사진1

무령왕릉에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장신구를 비롯해 구슬, 거울, 동제그릇, 중국제 도자기 등 모두 108종 46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부장되어 있었다. 그 중 중국제 도자기는 웅진기 수입 중국도자를 대표한다. 출토된 자기는 모두 9점으로 청자 육이호 2점, 흑유 사이병 1점, 자기잔 6점이다.

이들 자기는 당시 양조(梁朝)에서 유행하던 것들로서 중국에서 4세기 경부터 나타난 연판문 장식 등이 나타나고 있다. 525년 능에 안장된 무령왕의 묘에서 중국 양나라 자기가 출토된 사실은 당시의 국제 정세 속에서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대단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청자연판문육이호(靑磁蓮瓣文六耳壺)는 뚜껑이 있는 유개호와 뚜껑이 없는 무개호가 각각 1점씩 나왔다. 이 두 점은 기본적으로 배가 불룩하여 구형에 가까운 동체, 짧게 직립한 목, 평저의 다리굽, 어깨에 가로로 부착된 각진 귀 등이 매우 독특하다. 어깨부위에는 가늘고 또렷한 음각으로 두 줄의 선문을 돌렸으며 그 위쪽으로 6개의 귀를 붙였다.

그 가운데 4개는 쌍으로 마주 보며, 나머지 두 개는 그 사이 사이에 하나씩 대칭으로 붙였다. 귀는 가로로 늘여 붙이기를 한 후 모서리를 각 지게 깎아 다듬은 형태이다. 몸체 중앙부의 팽만한 부위에는 복판형의 연판문을 11엽 나란히 돌려 깎았는데, 음각선은 굵으나 일부 연잎 가장자리 부위를 편절조(片切彫)에 가깝게 칼을 뉘어 깎은 부분도 있어 두드러진 양각의 효과를 준다.

이들 청자 항아리와 양식상 유사한 예들이 중국 남경지역을 비롯한 강남지역 여러 곳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가장 유사한 예로는 1986년 강서서창시대옥첨촌(江西瑞昌市大屋詹村)에서 출토된 청유연판문육이호가 있다.

이 시기 연판문 장식 항아리들 가운데는 뚜껑 중앙에 사각형의 꼭지를 가진 것이 많아 하나의 공통점으로 파악된다. 청자호에 연판문이 장식된 가장 오래된 예로는 남조(南朝) 초로 비정되는 남경(南京) 상산(象山) 2호묘 출토품이 있다.

무령왕릉 출토 흑유 사이병 1점은 반구형 구부에 목이 길고 목 중간에 두 줄의 돌기선이 장식되었으며 동체는 기다란 구형이다. 가마 안에서 소성 시 일그러지고 유약도 산화되어 변색된 상태로 기형과 유색에 있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어깨에는 거의 등 간격 지점에 각지고 납작한 귀가 가로로 부착되어 있다. 중국 남조 6세기 초 흑유병의 특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9점 중 6점의 자기 잔이다. 이 잔이 어떤 종류의 도자기인지 즉 청자인지 백자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 흔히 보이는 굽 형식인 평저의 다리굽으로 6점 모두 굽바닥에 삼각형의 작은 태토비짐눈이 세 군데 붙어 있으며 내저면에는 태토비짐눈 자국이 남아 있다. 이들 여섯 개의 잔 중 다섯 점은 등잔으로 사용되어 벽감에 하나씩 놓여 있었고, 불을 붙이기 위한 심지가 남아 있다. 한 점은 무덤방 바닥의 흑유 사이병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처럼 무령왕릉 출토 중국 도자기는 공주 수촌리, 천안 용원리 등 다른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와 함께 수입도자로서 중국 남조와 백제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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