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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충청유물 찾아서]금동제 허리띠 장식

2010-07-19 기사
편집 2010-07-18 06:00:00

 

대전일보 > 문화 >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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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도깨비 문양’ 웅진시기 특징 · 한성시기 후반 ‘관복문화’ 존재 추정

첨부사진1사진=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공주 송산리 고분군 출토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제13호로 웅진동과 금성동 일대에 남아 있는 백제의 왕족과 귀족의 무덤터다. 이 무덤 터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됐기 때문에 ‘무령왕릉’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송산리고분군에서 현재 확인되고 있는 무덤은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이 있고, 이 외에 돌을 이용해 쌓은 굴식돌방무덤인 1-5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송산리 고분군의 배치는 구릉의 윗부분에 1-4호분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그 남쪽에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또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다.

송산리 고분에 대한 조사는 비교적 일찍부터 진행됐다. 1-5호분을 비롯한 주변의 돌방무덤들은 1927년에 조사되었고 1933년에는 벽돌무덤(6호분)이 조사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조사에서는 출토유물이 거의 없어 무덤들의 성격을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웠다.

송산리 고분군 출토유물 가운데 허리띠와 같은 띠의 장식으로 보이는 유물이 몇 점 있어 주목되는데 그 가운데 한 점이 방형판으로 된 귀신얼굴무늬 장식이다. 이 유물은 3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송산리 3호분은 남향의 경사면에 지하로 땅을 파고 벽돌형태의 깬 돌을 이용해서 무덤방과 널길을 만든 횡혈식석실분으로 천장은 궁륭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제 허리띠 장식 2점과 말꾸미개 조각, 은제꽃 장식, 관못, 철제대도가 있다.

금동제 허리띠 장식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네모꼴이며 중앙부분에는 도깨비얼굴을 장식하고 아래쪽에 드리개를 장식할 수 있도록 한 구조다. 허리띠 장식 판은 상하보다 좌우가 조금 더 길며 상하변에 각 3개씩의 못을 박았다. 네모난 판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파상점열문이 새겨져 있고 그 안쪽에 또 다른 점열문이 새겨져 있다. 점의 형태는 원형이 아니라 길쭉한 이등변삼각형 모양이다. 중앙부의 도깨비얼굴은 두드려 새긴 무늬로 1차 두드린 후 세부적으로 가공해서 문양을 선명하게 표현했다. 도깨비의 얼굴은 모서리의 각을 죽인 네모꼴로 이마를 둥글게 표현하고 부리부리한 눈, 납작한 콧날, 옆으로 길쭉하게 표현된 입 모양을 하고 있어 화가 난 모습으로 표현됐다. 또 얼굴 전면에 사자의 갈기와 같은 선문양이 묘사되어 있다.

도깨비 얼굴 모양의 허리띠 장식은 송산리 3호분 외에도 1호분에서 파손된 상태의 것이 출토되었으며, 공주 수촌리 유적 1호분과 4호분에서도 출토됐다. 송산리 1호분 출토품의 경우는 3호분 출토품과 거의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촌리 1호분 출토품의 경우 오각형에 가까운 판 모양에 도깨비의 얼굴을 표현하였는데 도깨비는 이마의 양쪽으로 두 귀와 뿔을 쫑긋 세운 듯 표현하고 그 사이의 이마에 세로로 선을 조밀하게 넣었다. 또한 수촌리 4호분 출토품은 네모꼴의 판 모양에 도깨비무늬를 표현하였는데 이마를 둥글게 하고 판의 가장자리에서는 파상문의 흔적이 있다. 이러한 문양은 송산리 3호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백제지역 외에 합천 옥전 고분, 고령 지산동 고분군, 傳 거창 출토품이 있고, 일본에서도 鐙塚, 牛文茶臼山古墳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도깨비 문양 허리띠장식은 웅진시기의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백제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보인 대가야나 왜로도 전파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웅진시기의 독특한 허띠장식의 존재는 한성시기 후반에 이미 백제적인 관복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확대해석 해 볼 수도 있다.

김수영 기자 swimk@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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