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사 정리하는 류철 ETRI 선임 연구원

2010-06-25기사 편집 2010-06-24 06:00:00

대전일보 > 기획 > 특집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대전 곳곳 전투현장… 알면 알수록 애정 생겨”

“대전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곳으로 북한군이 들어왔습니다. T-34 전차를 앞세워 1번 국도를 타고 온거죠. 미군도 그냥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전시청 자리에 포진지를 구축하고 밀려오는 인민군을 향해 포탄을 쏟아부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류철(37)씨는 마치 생생히 목격한 것 처럼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30대 후반의 류씨는 6·25전쟁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전후(戰後)세대. 또 근현대사나 전쟁사와는 거리가 먼 공학도 출신이다. 이런 류씨가 한국전쟁 당시 대전에서 벌어진 전투를 참전용사나 관련 전문가 이상으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남다른 ‘관심’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대전사(史)를 한번 정리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까 6·25전쟁 당시 대전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가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발을 딛고 생활하는 곳에서 그런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류씨는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한국전쟁사에서 6·25전쟁, 특히 대전에서 전개된 전투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는 인터넷 ‘위키백과’에 관련 자료를 정리해 올리고 있다. 위키백과에 대전의 6·25전쟁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류씨가 처음이다.

이렇게 대전의 6·25전쟁사를 정리하다 보니 대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고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거리와 공원, 건물과 산이 다르게 다가왔다.

류씨가 가끔 산책삼아 들르던 월평공원에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한 기관총이 세워진 곳이다. 가수원 다리가 보이는 정림동 도솔산 위에는 계백로를 경계하는 진지가 구축됐다. 자주 지나던 서대전네거리는 한국전에서 처음으로 3.5인치 로켓포로 북한군의 소련제 T-34탱크를 파괴한 장소다. 대전여고에서는 길을 잘못 든 미군들이 북한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미군은 차량을 버리고 도보로 대전대학교 방면 대동 산기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우리가 출근하면서 지나던 곳,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곳, 놀러가던 곳이 모두 격전지였습니다. 대전 전역이 그랬으니까요. 그곳에서 한국, 특히 대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미군들이 대전을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니 매일 지나던 곳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논산과 유성 방면으로 진격한 북한군,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군은 1950년 7월 19-20일 이틀간 대전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병력과 화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북한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군은 옥천을 지나 영동으로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미 24사단장이었던 딘 소장이 실종되고 1개월 뒤 북한군에 포로가 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숨막히게 전개됐던 대전에서의 48시간 전투를 류씨는 이렇게 평가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대전에서 전개된 미군과 북한군의 전투는 미군의 완패였습니다. 희생도 컸구요. 하지만 의미있는 대목도 많습니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놓고 지금도 논란을 빚고 있지만 북한군을 하룻동안 저지시켰구요.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T-34 전차를 로켓포로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공학도로서, 자신의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에 왜 관심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류씨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일종의 취미생활입니다. 이런 취미를 갖는 사람이 많아야 지역사회와 문화, 역사, 생활이 더욱 풍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대전의 역사와 거리, 공원, 시장, 인물, 건물, 문화를 정리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대전에 대한 애정도 훨씬 커지지 않을까요?”

류씨는 6·25전쟁사 정리가 끝나면 또 다른 분야의 대전 역사를 정리해 지속적으로 위키백과에 올릴 계획이다. 그저 ‘취미’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역무원이었던 할아버지, 교사였던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대전에서 살고 있는 류씨는 그 일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기는 게 분명해 보였다.

김형석 기자 blade31@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

첨부사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