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 100억 원대의 부동산을 기부한 조천식·윤창기 씨 부부는 기부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보여준다. 80대인 이들 부부는 직접 KAIST 발전재단에 전화를 걸어 기부 의사를 밝혀 기부의 의미를 더했다. 조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서남표 총장을 만나 KAIST의 교육과 비전 등을 꼬치꼬치 묻고 나서 최종적으로 기부 의사를 밝힌 지 불과 2시간 뒤에는 교직원에게 되도록 빨리 재산을 이전해가라고 했다고 한다.

주목되는 건 조씨 부부가 ‘기부 바이러스’에 감염돼 100억원 대 부동산을 쾌척했다는 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의 영향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했다. 외동딸을 시집보낸 뒤 고민하던 조씨 부부는 결국 사회 사업 대신 대학에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KAIST에 100억 원을 내놓았다. 대학 측이 과학 교육 발전에 유용한 데 알아서 써달라는 당부 만을 남겼다.

특권층의 의무인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국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부를 이야기 하기 민망할 정도로 온갖 탈·불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 혈안이 된 게 가진 자의 행태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찌 재산 뿐만이겠는가. 원정 출산을 마다하지 않고, 입대를 기피하는 사례에서 보듯 우리의 특권층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 대신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조씨 부부의 기부는 깊고도 큰 울림을 우리 사회에 안긴다. “무언가 특별하기 때문에 기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갖고 있기 때문에 기부를 하는 것”이라는 조씨 부부의 설명에서 기부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기부 문화는 선진국에서 일상화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부인 멀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기부는 익히 보아온 터다. 그들은 최근 “억만장자여, 재산의 반 이상을 기부하자”고 외치며 미국 400대 억만장자들에게 기부를 독려하고 나섰다. 최소한 재산의 50%를 생전이나 사후에 기부한다고 발표하도록 설득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눔의 행복 전도사를 자임하는 버핏이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한 데 이어 케이블 TV 갑부 게리 렌페스트,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 등 4명도 이미 기부를 약속했다. ‘기부 바이러스’ 감염이 만들어낸 멋진 풍속도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로 부끄럽다”고 한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의 고언을 한번 쯤 되새길 일이다. 존경받는 부자를 눈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조씨 부부의 기부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가진 자들이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땀흘려 재산을 일구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기부는 보다 숭고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조씨 부부가 그랬듯 아름답고 숭고한 ‘기부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 곳곳을 감염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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