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세기 ‘학봉리 가마’ 대표작

사진=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사진=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귀얄 붓에 백토를 묻혀 회청색 태토의 병 표면을 하얗게 칠한 뒤 그 위에 산화철 안료로 모란 무늬를 그린 이 ‘분청사기철화모란문병’(粉靑沙器鐵畵牡丹甁)은 충남 공주 학봉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바탕의 백토와 무늬의 산화철 안료가 대비되면서 무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산화철 안료로 무늬를 그린 철화분청사기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까지 생산된 분청사기의 하나로 그 생산지는 현재 전남 고흥 운대리와 충남 공주 학봉리 두 곳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특히 계룡산 기슭에 분포하고 있는 공주 반포면 학봉리 가마는 철화분청사기의 주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철화분청사기는 ‘계룡산 분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병에서는 간략하면서도 빠른 필치로 모란 무늬를 그렸는데, 모란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한다 하여 각종 공예 장식에 자주 등장하는 무늬 소재의 하나였다. 고려에서는 궁중은 물론 권문세가들에게도 크게 사랑 받게 되어 각종 공예 의장으로 이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모란이 보다 대중화되고 부귀공명의 길상적인 상징이 부각되면서 생활전반의 회화, 자수, 공예품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장식문양으로 널리 쓰였다. 도자기로는 고려시대 청자에서 간결하게 도안화된 모란무늬가 시문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분청사기뿐 아니라 청화백자․철화백자 등에서 민화풍의 회화적인 필치로 그린 모란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분청사기’는 옛 기록에는 없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 최초의 한국미술사학자이셨던 고유섭(高裕燮,1905-1944) 선생이 붙인 이름으로, 회청색 그릇에 백토를 입혀 여러 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냈으므로 ‘백토를 분장(粉粧)한 회청사기(灰靑沙器)’라는 뜻으로 이를 줄여 사용하게 된 것이 ‘분청사기’라 부르게 된 시작이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 조선 전기에 걸쳐 약 150년간 만들어진 그릇으로 고려 말의 질 낮은 상감청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흔히 분청사기를 그 장식기법에 의해서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분장(粉粧, 혹은 덤벙·담금이라고도 한다)의 7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중 엄밀한 의미에서 분장(粉粧)한 회청사기(灰靑沙器)의 개념에 맞는 것은 상감, 인화기법을 제외한 나머지 장식기법에 의한 분청사기들이다. 조화·박지기법은 백토로 분장한 뒤 새기거나 긁어내는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무늬를 나타내는 것이고, 철화기법은 백토 분장 뒤 철사 안료로 무늬를 그린 것이다. 박지분청사기 중에 긁어낸 태토에 철사 안료로 철채(鐵彩)를 함으로써 무늬의 백색과 배경의 흑색을 강조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귀얄분청사기와 분장(덤벙,담금)분청사기는 백토의 붓 자국과 흘러내림만으로 무늬 역할을 한다.

학봉리 가마의 일부는 192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처음 발굴됐다. 그 후 세간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학봉리 일대 가마는 훼손되거나 방치되어 그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0년 8월 학봉리 산22-1번지 일대가 사적 33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이 학봉리 일대 가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1992년 5호 가마 일대를 공동 발굴 하였으며, 1993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2차 추가 발굴이 있었다. 발굴 결과 1927년 발굴했던 5호 가마 외에 추가로 새로운 가마 2기를 발견하는 성과도 있었다.

철화분청사기에 그려진 그림에는 이 병에서 보이는 모란무늬 외에도 연못 속의 물고기 문양이 있는가 하면 연꽃, 넝쿨, 풀 무늬 등이 강렬하면서도 추상적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철화문양의 대범하면서도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자유분방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고려청자의 세련된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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