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 장식품… 백제 금속공예 정수

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금동널꾸미개

-부여 능산리고분군 출토

금동으로 만든 널장식. 금동널꾸미개는 처음 능산리 고분군의 관대 위에서 목관 파편과 함께 발견됐기 때문에 목관을 장식하는 꾸미개 중 하나 였을 거라고 추측된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왕의 관의 좀 더 기품있게 만듦과 동시에 관의 몸체와 뚜껑을 고정시키는 도구로도 사용돼기도 했다. 아래쪽 가까이에 원형의 구멍이 뚫린 장방형 판이 있고, 그 윗부분에 산모양과 심엽형(식물의 속잎꼴)을 투각한 장식이 달려 있다. 산 모양과 심엽형 장식은 금도금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쪽과 바깥쪽 끝부분에는 가늘게 음각선이 장식돼 있다. 백제시대 유물에 자주 등장하는 장식으로 입체감이 돋보인다. 이는 백제 시대 왕실의 묘장 풍습을 알려주는 자료인 동시에 화려하게 꽃피웠던 당시 금속 공예의 정수가 담긴 귀중한 유물이다.

백제의 금속 공예는 그동안 웅진 시기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알려져 왔으나,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세기의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가 세상에 빛을 보면서 화려하게 꽃핀 사비 시기의 금속 공예 문화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는 금동대향로와 함께 발굴된 금동광배나 여러가지 장신구 등 수준급의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교한 누금기법(작은 금 알갱이를 붙여 문양을 아로새기는 방법)으로 만든 금장식 등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 비춰봐도 최고로 꼽는 공예기술이다.

부여 능산리 절터 공방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금속는 그 화려하고 섬세한 디자인을 물론 사상적인 측면에서 당대 최고의 제작기술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부여 능산리 절터는 사비 도성의 바깥쪽을 둘러싼 나성과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 있다. 능산리 절터는 물을 가두어놓는 저수시설, 유리구슬, 동 재료, 동을 녹이다 만 것 등이 함께 공방터임을 입증하는 철제모루, 숫돌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는 백제가 당시 사찰에서 불교의식을 거행하고 수행하는 불교 도량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불교 의식 용구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융성기를 맞았던 백제 시대 당시에 웅장한 왕사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듯이 이곳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해 수많은 중요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화려한 금속공예품이 줄지어 나왔다. 당시 최첨단 금속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는 이들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수많은 아이콘이다.

능산리 제3건물지의 중간 계단 입구에서 출토된 금동광배편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물이다. 여러 조각으로 파손돼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대체로 두광(頭光)쪽 외연에 해당되는 일부분이라고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조각 중 가장 큰 부분은 굵은 줄기의 굴곡진 인동 당초무늬가 유려하게 조각되었고 그 바깥으로 굵은 광배 테두리가 돌출된 모습, 나머지 두 편(片) 가운데 한 편은 앞서 광배보다 굵은 테두리 외연에 화염무늬를 음각했다. 현존하는 조각만으로 미루어보아도 원래 반경이 60㎝에 이르는 초대형 거신광배(擧身光背)였으리라고 추정된다.

능산리 절터의 금당지에서는 또 한 점의 금동풍경판이 출토됐다. 여기에서는 쇠방울도 확인됐는데, 공방에서 생산된 물품이 같은 사원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윗부분이 둥글고 아래쪽은 제비꼬리 모양을 한 금동풍경판은 동판에 금박을 새겼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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