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건(Smoking Gun)’이라는 시사용어가 있다. 직역하면 ‘연기나는 총’, 즉 범죄 등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1892년 발간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 ‘The Gloria Scott’에서 유래됐다. 이 소설에서는 ‘Smoking Gun’이라는 표현 대신 ‘Smoking pistol’이 쓰였다. 배 안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옆에 서 있던 채플린이라는 사람의 손에 ‘연기가 나는 피스톨’이 들려 있었다는 내용이다. 즉 그 사람이 살해범이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 셈이다.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당시 미국 닉슨대통령의 탄핵소추가 진행중일 때 뉴욕타임즈가 처음으로 ‘Smoking Gun’을 쓰면서 부터다. 당시 뉴욕타임즈 기자였던 로저 윌킨스가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기사 중에 “Where’s the smoking gun?”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결정적인 사고원인(Smoking Gun)이 밝혀지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 4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모두발언을 통해 “현재까지 분명한 사실은 천안함은 단순한 사고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천안함 사태가 터지자마자 남북관계를 포함해 중대한 국제문제임을 직감하고 국제협력을 통해 원인을 밝힐 것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인이 밝혀지는 대로 우리는 그 결과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리고, 원인을 찾고 나면 나는 그 책임에 관해 분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시사했지만 구체적으로 북한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판명될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확실한 물증이 나올때까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몇 몇 언론들이 6일자로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인 단서(Smoking Gun)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민군합동조사단 관계자의 말을 빌어 폭발당시의 충격으로 함체에서 떨어져 나간 연돌(연통)에서 어뢰의 화약성분이 검출됐고, 천안함 내부와 침몰해역에서 수거한 알루미늄 파편들 가운데 일부가 어뢰파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런 발빠른(?) 보도가 자칫 천안함 침몰사건을 ‘북풍’으로 몰고 가려는 보수진영의 계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이 북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더라도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한경수 서울 정치부 차장 hkslk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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