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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충청유물 찾아서-금동봉황장식

2010-04-19기사 편집 2010-04-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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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등 최상위 계급과 연관

첨부사진1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금동봉황장식(金銅鳳凰裝飾)



-부여 부소산성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봉황은 봉과 황의 합성어로 봉은 수컷을, 황은 암컷을 이른다. 상상 속 영원불멸의 새로 일컬어지는 봉황은 오색 깃털을 지나고 다섯가지 음을 낸다고 전해진다. 깨끗한 이슬만 먹으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노래하며 살기 때문에 태평성세를 이루는 나라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또 봉황은 살아있는 생물은 먹지 않는다고 보면서 불교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영물로 여기기도 한다. 때문에 사찰에서는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대웅보전 처마 밑에 봉황을 장식한다.

동아시아의 박산을 포함해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헌이나 유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조이기도 한 봉황은 천자(天子)의 궁문과 수레에 장식하는 등 천자를 상징하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백제 유물에 나타나는 봉황 역시 왕을 비롯한 최상위 계급의 위신재(威信財)와 관련이 많다. 백제금속공예의 걸작품인 백제금동대향로의 맨 윗부분에도 비상하려는 듯 활짝 날개를 펼친 봉황이 장식되어있다. 주로 삼국시대의 환두대도 손잡이 장식 등에 표현되며, 특히 백제에서는 무령왕릉 출토 왕비 베개나 부여 외리 출토 문양전 등 다양한 유물에 묘사되어 있다.

이런 봉황의 모습이 담긴 금동봉황장식은 부여 부소산성 움집터 부근에서 수습됐다.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당시 사비성으로도 불린 부소산성은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에 달한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이다.

금동봉황장식은 일부 부식되었지만 도금이 잘 남아있고 발색이 좋다. 입에 여의주를 물고 머리를 치켜든 봉황의 모습으로 날카롭게 휘어진 큰 부리와 치켜 올라간 매서운 눈매 등에서 위엄 있는 봉황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부리 위에 길게 째진 콧구멍과 눈 옆에 뚫린 귓구멍까지 세밀하고도 섬세하게 묘사돼 사실감이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머리 뒤로 넘어간 깃에 새겨진 구름무늬와 눈 위로 흩날리도록 표현된 눈썹에서는 서기(瑞氣)가 느껴진다. 목 뒷부분은 원통형으로 마무리하여 목봉(木棒) 등을 끼워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출토될 당시에는 실제로 끼워서 사용하였던 목질이 남아있었다. 이로 미루어 의식이나 제사 등에 사용했던 도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동봉황장식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백제는 금속공예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 백제는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던 마한 지역의 전총을 바탕으로 중국과 고구려의 발달된 금속공예 기술을 받아들이며 수준 높은 미의식과 찬란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독특한 금속공예 문화를 이루어 낸 것. 백제의 금속공예는 그동안 웅진 및 사비시대에 걸쳐 출토된 다양한 국보급 유물 등을 통해 확인됐다.

백제의 금속공예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받아들여 세련된 조형감각을 꽃피웠으며 사비시기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는 백제금동대향로와 함께 발견된 금동광배나 여러 가지 장신구뿐 아니라 백제인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정교한 누금기법(작은 금 알갱이를 붙여 문양을 새기는 방법)으로 만든 금장식이나 인동무늬와 불꽃무늬가 투조(금속판을 문양에 따라 오려내는 방법)된 금동장식, 꽃무늬로 만들어진 다양한 장식품들은 당시 백제의 뛰어난 제작기술과 공예품의 다양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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