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동시대를 살아온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소론의 영수 윤증은 둘다 충청도 출신으로 22살 차이다. 윤증은 송시열을 스승으로 주자학을 배웠지만 주자를 절대적으로 받들지는 않았다.

두 학자는 사제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불화를 만들었고 조선 후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쪼개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송시열은 학문적으로 주자학을 신봉했으며 윤증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허용했다. 정치적으로도 송시열은 숭명반청을 고집했으며 윤증은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둘 간에 시비가 격화된 것은 현종 14년(1673) 윤증이 아버지 윤선거의 묘갈문(墓碣文)을 송시열에게 부탁하면서 부터다. 송시열은 성의없이 비명을 지었고 결국 윤증의 부탁에도 끝내 이를 개찬하지 않았다. 몇년 후 서인(西人)의 분열이 일어나자 윤증이 이런 개인적 감정과 함께 송시열의 덕행과 학문을 비난하면서 사제의 인연은 끊어지게 된다.

이를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회니시비(懷尼是非)라고 부른다. 송시열의 거주지는 회덕(懷德)이고, 윤증의 거주지는 논산군 노성면에 해당하는 이성(尼城)이기 때문에 붙여진 사자성어다.

라이벌 한국사의 저자 김갑동 교수는 둘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한 사제지간의 상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또 그들 사이에 오고 간 논쟁을 백성들의 고통이나 이해와는 관련이 없는 명분싸움으로 결론지었다.

최근에 충청도의 라이벌을 찾으라면 박성효 대전시장과 염홍철 전 시장을 빼 놓을 수 없다. 대전토박이 박시장과 논산 태생인 염 전시장은 각각 1955년생과 1944년생으로 11살 차이가 난다. 한때는 기획관리실장과 대전시장으로 손발을 맞추던 질나팔과 저 같은 사이였다.

이들의 관계는 4년전 대전시장을 놓고 선거전을 치르면서 라이벌로 돌변한다. 둘 간의 시시비비(是是非非)도 이 때 처음으로 생겨났다. 둘의 앙금은 4년 내내 계속됐고 오는 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절정으로 치달을 것 같다.

이들 사이에 시야비야(是也非也) 하는 일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자전거 도로, 나무심기, 호수공원 조성, 과학공원 재창조, 국책사업 유치, 성북동 투자유치….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저런 의제들을 둘러싼 두 전· 현직 시장의 난타전은 이미 예고됐다.

과연 둘 간에 벌이는 시비곡직(是非曲直)의 시작과 끝이 어디까지 일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정책 대결을 넘어 이미 특정인을 겨냥한 출처불명의 잡음이나 근거없는 풍문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송시열과 윤증이 그랬듯 이를 두고 ‘21세기판 회니시비’로 부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조어(造語)상으로는 갑천변의 만년동에 박 시장이 살고 유등천변의 태평동에 염 전시장이 있으니 만태시비(萬太是非)가 맞을지도 모른다.

은현탁 사회부장 eun@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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