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가 실종자 수색에서 인양작업으로 전환되면서 사고원인 규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상조사의 핵심은 북한의 개입여부다. 아직까지 심증만 있고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러다보니 온갖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고, 정부와 군이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군사기밀이 과다하게 노출되고 말았다. 천안함 침몰사고는 해상 방위 외에 군사정보 노출이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드러냈다. 언론의 군 기밀 공개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1,2급 이상 군사기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도 없었다.

국방부장관과 국회국방위원장이 언급한 북한 잠수함 2척의 묘연한 행적, 그 중 한 척의 사고당일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 북한 잠수함과 기지 간 교신 포착, 그리고 한미정보당국이 북한의 잠수기지를 하루 2,3회 위성사진으로 촬영해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공개한 것은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천안함 사태로 인해 북한은 북한군내부의 해상전력과 장비에 대한 일제 점검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특히 통신주파수와 암호 등을 수시로 변경하여 종전보다 해독이 훨씬 어렵도록 할 게 분명하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개한 열상감지장비(TOD) 영상과 교신록 공개, 해군 함정 이동 경로 변경 등은 우리 군으로 하여금 새롭게 작전을 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속초함 함포 유효사거리, 레이더 최대탐지거리, 군함설계도 공개 등 국방부가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될 작전, 첩보능력, 무기체계까지 다 공개하는 바람에 초계함의 약점이 드러나 버렸다. 이를 북한이 역이용해 전술을 바꿔 대응하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고 군은 우려하고 있다. 안보전문가들은 이 정도면 우리 해군을 발가벗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형국이라며 북한만 좋은 일 시킨 꼴이라고 말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군기밀 공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군기밀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기까지는 일차적으로 軍당국의 책임이 크다. 사고발생 초기부터 정보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했다. 각종 추측보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말로만 해명하려했다. 원인 규명의 가장 기초적 요소인 사고발생시각부터 이미 몇 차례 번복했고, 사고원인 또한 내부폭발에서 어뢰와 기뢰까지 오락가락했다. 이렇다보니 군이 뭔가를 숨기려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의혹을 풀기위한 설명과정에서 정보공개 원칙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발표하다 수많은 군 기밀을 흘리고 만 것이다. 군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대북관련 군기밀 공개의 범위를 확실하게 결정해야하고, 군민합동조사단은 군과 정부가 국민에게 공개한 군기밀정보 전달과정을 조사해 국가안보를 재정비할 수 있는 근거로 삼도록 해야 한다.

우리군의 대북정보수집은 미국과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은 만큼 한미공조의 틀을 유지함과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테두리에서 기밀공개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언론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율적이건 합의에 의해서건 군정보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면 한다. 군의 정보통제를 이유로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추측성 기사를 확대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먼저 흥분하고 온갖 억측보도로 혼란을 부추겨 정확한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물론 45명의 실종자와 그 가족들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건의 진실을 캐내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국가안보를 포기할 수도 없다. 국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모아 나름대로의 보도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향후 한반도 정세는 긴박하게 전개될 것이다. 경제 불안 등 북의 내부사정이 상당히 불안한데다 김정일 유고 등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안보 문제가 충돌할 대형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를 대비해 군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보공개 방안을, 언론은 국익을 위해 어디까지 군기밀을 다룰 것인지 총의를 모아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안보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정보공개의 적정 수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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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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