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週忌)를 보내면서 다시 한 번 일본을 생각해 본다. 100주기가 지나도록 일본은 안 의사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분명히 안 의사의 매장지를 자기네들은 어느 문서인가에는 분명히 숨겨 놓고 있을 터인 데도 말이다.

한·일 역사 왜곡은 물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버젓이 가르치고 약탈해 간 문화재도 돌려줄 생각은 애당초 해보지도 않은 채 위안부나 생체실험과 같은 만행은 모른다는 말로 일관되게 주장하는 일본의 철면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술 취한 일본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로 뛰어들어 그와 함께 죽은 우리의 일본 유학생 이수현 군을 우리는 기억한다. 양식 있는 일본인들도 지금까지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일본인들 모임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국민 속에도 정의감과 양심이 살아 있는 국민이 많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이런 그들의 정의감과 양심에 호소해 나간다면 그들의 철면피는 어느 정도 벗겨지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 본다.

일본 교토(京都)에 가면 유명한 ‘귀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침략해 온 일본 군사들이 자신이 죽인 조선인 군사의 귀를 잘라 본국으로 가져가 묻어 놓은 무덤이다. 그러나 실제는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다. 그래서 그 무덤의 표지판에는 귀무덤(耳塚)이라 써 놓고 괄호 안에 ‘코무덤(鼻塚)’이라고 썼다. 왜 그랬을까?

처음에는 조선 병사의 시체를 일본까지 가져가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힘들자 방침을 바꿔 죽은 병사의 코만을 베어 가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베어서 소금에 절인 코의 숫자를 헤아리고 땅에 묻었으나 양심상 스스로 잔인하다고 생각했던지 귀를 베어 간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귀무덤이라고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일말의 양심은 있어 귀무덤이라 하고도 괄호 치고 코무덤이라 쓴 것이다.

그런 참혹한 일을 겪은 우리는 얼굴을 들기 어려울 만큼 부끄러우면서도 일본의 잔학함에는 치를 떨고 있을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그 무덤을 볼 적마다 어떤 감정이 들까가 몹시 궁금하다. 게다가 그 무덤은 지금도 하필이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당 앞에 있다. 일본을 방문한 많은 외국 사람들이 이 무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인의 후예인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 못지않게 일본인들도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잔악함에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텔레비전의 ‘진품명품’ 프로에서 전문적으로 도자기를 감정해 주는 이상문(李相門) 씨와 언제인가 한 번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 국내에만 가두어 놓고 전시하는 것보다는 외국의 여러 박물관에도 두루두루 전시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문화선양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의 문화재를 일본 스스로가 전시하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약탈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일본인들과 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얘기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이집트 유물보다 더 많은 이집트 유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한국에 오지 않아도 일본을 통해서 한국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문화재는 우리의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우리 인류 모두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문화재라고 하여 꼭 우리 국내에서만 소유하고 전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역사도 왜곡하는 나라 사람들이니 우리의 문화재를 자신들의 것으로 위장할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명백한 물증을 놓고 설마 그럴 리야 없다고 보고 하는 얘기다.

앞서 말한 귀무덤은 일본에 있기에 오히려 일본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잔혹함에 전율하도록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역설적으로 귀무덤이 귀무덤에 대한 훌륭한 복수도 하면서 일본을 부끄럽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같은 생각으로 이순신 장군이 대첩(大捷)을 이룬 해전(海戰)지역마다에 이국땅 해변에서 죽은 일본 병사들의 진혼비(鎭魂碑)라도 세워 그들을 위로하는 위령제라도 지내 준다면 일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것인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일까? <전 환경부 장관·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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