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 억압에… 고통스런 삶

아산시 배방읍 회룡마을 최성식(41) 이장이 친일파 소유 땅이었던 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이찬선 기자
아산시 배방읍 회룡마을 최성식(41) 이장이 친일파 소유 땅이었던 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이찬선 기자
[아산]<속보>=국가가 친일파 소유 땅을 회수한 후 수백여만원의 임대료를 물려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아산시 배방읍 회룡 1리 무학촌 주민들은 친일파 후손들의 억압에 짓눌려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 8일자 7면 보도>

이들은 평생 집수리 한번 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아왔으며 마을 도로도 포장이 안돼 비만 오면 진흙탕 길을 감내해야 했다.

국가보훈처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지난해 4월 이 마을 1만2848㎡를 환수했을 당시 주민들은 조상 때부터 살아온 이곳이 친일파 재산인 줄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이 마을의 풍경은 70년대 초가를 개량한 새마을운동 당시 풍경 그대로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슬레이트와 함석지붕이 주민들의 힘겨운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처마가 내려와 지붕을 고치려 해도 지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승낙을 해 주지 않아 여태 살아온 거죠.”

마을주민 김종운(64)씨는 평생 집 한번 고쳐보지 못하고 살아온 설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매년 추수 때만 되면 어김없이 친일파 한상룡의 후손들이 수금명부를 들고 마을을 순회하며 임대료를 걷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불평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자칫 쫓겨나기라도 하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좁다란 마을 도로도 흔한 시멘트 포장조차 돼 있지 않다. 진흙탕 길은 예사다. 하수도 시설도 70년대 새마을운동 때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다.

주민들은 아산시에 도로를 보수해 줄 것을 수 차례 요구했지만 사유재산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 자식들은 대부분 고향을 등지고 평균 연령 65세가 넘는 고령화 마을로 변한지 오래다. 노인들은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생계를 유지해 왔다.

국가가 부과한 수백만원의 임대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주민들은 “안 그래도 힘겨운 삶인데 국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81세인 안모 할머니는 “나물을 뜯어 시장에 내다 팔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데 나라가 1년 생활비를 내라며 노인네들의 등골을 빼먹으려 한다”고 나무랐다.

국가보훈처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해 친일파 후손 소유의 땅을 환수한 뒤 토지를 주민들에게 지난 2일 대부계약 체결을 통보하고 가구마다 200여 만 원의 연간 사용료를 집단 부과했다.

조모 할머니는 기존 임대료보다 20배 많은 200여만 원을 부과 받았고, 안 할머니는 13배, 김씨는 20배에 달하는 임대료로 내야 할 처지이다.

이 마을 최성식(41) 씨는 “대부분의 가옥이 성한 곳이 없이 힘겹게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며 “고령자들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의 소원은 집수리라도 해서 따뜻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선 기자 chansun2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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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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