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김갑동 교수의 대전충청 역사문화 다시보기-②선사유적지와 신석기

2010-01-18기사 편집 2010-01-17 06:00:00     

대전일보 > 문화 > 문화재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빗살무늬 토기 출토… 원시 농경사회 형성

첨부사진1노은동 선사박물관 내의 원형 홀. 선사 문화의 발전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기원 전 8000년 내지 7000년 경부터 지구상의 기후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지구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빙하기가 없어져 현재와 비슷한 기후 상태가 되었다. 인간의 두뇌도 조금씩 발전하여 돌을 깨서 쓰는 단계에서 돌을 갈아 도구를 만드는 단계로 변화하였다. 돌을 가는 데는 깨는 것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었지만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쓰는 데에도 훨씬 용이하였다. 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쓰는 토기가 제작되었다. 이를 ‘신석기 시대’ 또 ‘간석기 시대’라 한다. ‘간석기 시대’는 돌을 갈아서 사용한 시대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도 초기에는 수렵과 어로 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야생에서 먹고 남은 씨가 땅에 떨어져 주거지 옆에서 다시 자라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인류는 주거지 옆에 씨를 뿌려 곡물을 재배하는 농경을 시작하였다. 또 수렵에서 잡아 온 야생 동물들을 다 먹지 못하게 되자 이들을 주거지 옆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면서 목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농경과 목축은 인류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와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한다.

‘신석기 혁명’으로 주거 생활이 떠돌이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변화하게 되었다. 먹을 것을 주거지 옆에서 조달할 수 있어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들은 움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같은 핏줄로 이어진 씨족 사회를 이루었는데 씨족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부족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곡식을 수확하게 되면서 이를 저장하고 익혀 먹을 수 있는 그릇도 필요하였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토기의 제작이었다. 당시의 토기는 그릇 밑바닥이 둥근 반란형(半卵形) 모양이었으며 그릇 전면에는 빗살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은 목축의 결과 먹고 남은 동물의 뼈로 바늘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었으며 동물 뼈나 조개껍데기 등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당시 인간들은 자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기후의 변화와 인간의 생활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하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하늘의 변화에 따라 비가 오기도 하고 천둥이 치기도 했으며 불같은 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따라서 하늘을 숭배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하늘에 있는 해와 달, 별들에도 인간처럼 각각의 영혼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여기에서 애니미즘(Animism) 사상이 탄생하였다. 한편 덩치가 크고 무서운 동물을 보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특정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 생겨났다. 무당(샤먼)도 하늘, 영혼과 인간 세상을 이어주는 자로 숭배되었다. 샤머니즘(Shamanism)이 그것이다.

그들이 농경을 시작했다는 것은 각종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석기 유적에서는 각종 농경 도구가 출토되고 있다. 땅을 파거나 알뿌리를 캘 때 사용했던 돌보습, 잡초를 걷어내거나 씨를 뿌릴 구멍을 파는 데 사용했던 돌괭이, 곡식의 이삭을 잘라 추수를 하는데 사용했던 돌낫, 거두어 들인 곡식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되었던 갈돌과 갈판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신석기 유적은 주로 강가나 해안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는 기온 상승에 따라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나 강물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뼈로 만든 낚시나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조개를 잡아 까서 먹었다.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조갯더미(패총)가 이를 증명해 준다. 돌창, 돌화살촉을 사용하여 동물을 잡는 수렵 생활도 지속되었다. 내륙의 신석기 유적은 수렵 생활의 증거이다.

대전·충남 지역에서도 신석기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해안 지역 뿐 아니라 내륙에서도 그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해미 휴암리 유적, 안면도 고남리 패총, 서천 장암리 패총, 서산 대죽리 패총, 보령 관상리·관창리 등은 해안 지역의 유적이고 대전 둔산동·송촌동·관평동·노은동, 아산의 풍기동·성내리 유적은 내륙에 있는 유적지이다.

대전 둔산동의 유적지는 대전 신시가지 개발을 충남대학교 박물관과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서 1991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금은 선사 유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신석기 유적은 해발 70여 미터의 야산 북서쪽에서 발견되었다. 땅을 파고 만든 수혈 주거지가 발견되었는데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저장용의 대형토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주거지 내부에 화롯불의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오랫동안 정착한 주거지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출토된 빗살 무늬 토기는 둥근 바닥으로 되어 있는 반란형이 대부분이다. 또 돌보습이나 어망추 등도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 둔산 지역의 신석기 사람들은 원시 농경과 어로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 노은동에서도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1997년 월드컵 경기장 조성을 위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굴되었다. 노은동 유적 역시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의 독 무덤까지 다양한 성격의 유물이 발견된 복합 문화층이다. 땅을 파 만든 수혈 유구 1기가 발견되었는데 타원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부에 화롯불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5점의 빗살 무늬 토기가 발견되었고 탄화된 도토리 열매와 갈대·도깨비 바늘 씨앗이 발견되었다. 이들 역시 당시 노은동 신석기 사람들이 농경과 채집 생활을 병행했음을 말해 준다.

이곳 노은동에는 유적 발굴을 기념하고 대전 지역의 선사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선사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노은동 유적지(기념물 제38호) 내에 위치한 선사 박물관은 2007년 개관하였다. 여기에는 '노은선사문화관'을 비롯한 5개의 전시실이 있다. 야외 체험장과 체험·자료실을 갖추고 있어, 학생들을 위한 학습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대전 지역의 문화유적 답사와 더불어 각종 사회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김갑동 : 대전대학교 인문예술대 학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첨부사진2대전 노은동 유적지(기념물 제38호) 내에 위치한 선사박물관은 ‘노은선사문화관’을 비롯한 5개의 전시실이 있다.

첨부사진3대전 둔산동 선사유적 공원 내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복원된 움집. 규모가 작고 내부에 화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잠시 머물렀다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