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새롭게 읽어내는 힘, 결국 사랑이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곧 사랑하는 방식에 다름 아니다. 서로 이질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그 뒤에 있는 보편적인 힘을 이해하는 일은 그만큼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 사랑은 관용과 신비의 끊임없는 파장을 필요로 한다. 시공을 뛰어넘는 다양한 가치들이 함부로 혼재해 있는 세기. 물신에 갇힌 이 문명의 정신적 교감을 어디까지일까.

1814년에 나온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는 괴테의 ‘서동(西東) 시집’은 그 교감의 방식을 보여준다. 자신의 칠순을 맞아 펴낸 이 시집은 노년기 괴테 사상의 결정체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통해 거대한 업적을 남긴 대문호 괴테는 정신과 물질, 삶과 학문,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우주적 원리를 평생 추구했다. 문학뿐 아니라 식물학·해부학·광물학·지질학·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 보편주의는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문학이란 모름지기 개별성을 존중하는 한편 인류의 보편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괴테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택했다.

괴테의 세계문학은 민족간의 정신적 교류를 통하여 ‘영원한 인간상 구현’이라는 공동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이념이다. 그는 특히 감정의 영역에서 세계정신에의 참여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여 `어느 한 민족의 문학이 아닌 모든 인류의 문학`을 온전히 실현하려는 의지로 일관한다. ‘서동시집’은 이를 총체적으로 집약한 작품으로, 삶과 자연, 그리고 시를 바라보는 괴테의 완숙한 영혼이 오롯이 담겨있다. ‘서동’은 유럽과 동양을 아우른다는 말. ‘순수한 동녘 땅’ 페르시아로의 상상 여행을 통해 경건한 신의 세계와 자유분방한 자연을 시인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파악, 동방의 사유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서동시집’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문학이 19세기 독일 시인 쾨테의 삶과 문학과 조우하며 ‘시인’이란 존재의 가장 내밀한 정신을 끌어내고 있다. 아랍과 서구에 큰 영향을 끼친 대시인 하피스에게 보내는 괴테의 시적 응답으로, 동방의 시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고스란히 살려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또한, 연인 마리안네와 암호문으로 주고받은 시들도 대화 형식으로 담겨 있다.

이는 먼 동방의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그의 개방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전의 연구는 유럽 중심적 시각으로 대상을 왜곡시켰다. 괴테는 마르코 폴로를 비롯하여 하피스의 시를 번역한 폰 하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왜곡된 시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괴테의 이 깨어 있는 의식은 현대까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1998년 유대 출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대·아랍 민족간의 화합을 위해 만든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라고 지은 것도 그 한 예이다.

‘서동 시집’은 모두 239편의 시를 12개의 시편에 나누어 묶은 연작시 형식이다. 가인 시편/ 하피스 시편/ 사랑 시편/ 명상 시편/ 불만 시편/ 잠언 시편/ 티무르 시편/ 줄라이카 시편/ 술집 소년 시편/ 비유 시편/ 배화교도 시편/ 천국 시편/ 유고중에서 등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진 시편들은 각각의 제목을 소재로 ‘조화를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한다. 노시인의 지혜, 세속적인 사랑의 정신적인 교감과 승화, 동방문화의 배경,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관의 공통점 등이 각 시편들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양과 서양, 사랑과 종교, 전쟁과 평화, 신과 인간, 시인과 비평가 등이 조화롭게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타문화를 향한 단순히 동경과 모방을 넘어, 자신의 삶에 자연스럽게 융해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그 시도는 오늘날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코란에 정통해 있던 하피스는 14세기 페르시아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시인으로 현세적인 것에서 신적인 것을 간구하는 내용의 시를 주로 썼다. 아랍어로 하피스는 ‘코란’을 완전히 외우는 사람이라는 뜻. 하피스의 시를 처음 접한 괴테는 신비로운 동방의 시인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괴테를 사로잡았던 것은 무엇보다 ‘저열한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 그리고 영혼을 신에게도 드높이는 것’이었다.

‘온 세상이 가라앉아버릴지라도/ 하피스여, 나는 당신, 오직 당신과/ 경쟁하겠어요! 기쁨과 고통은/ 쌍둥이 같은 우리에게 똑같겠죠!/ 당신이 어떻게 노래하고 술 마시더라도/ 그것은 나의 자랑, 나의 생명일 것입니다// 자, 스스로 불타는 노래를 불러요!/ 당신은 옛 시인이면서 새 시인입니다’

이 시편에서 보이듯 괴테에게 있어 동양정신과의 만남은 다소 숙명적이다. 자신보다 420년을 앞서 살았던 하피스의 영혼과 쌍둥이라 부르는데서 드러나듯 동양적 사유 속에서 재생산된 이미지 속에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신의 나라 동방이여!/ 신의 나라 서방이여!/ 북쪽과 남쪽의 터가/ 그분의 두 손 안에 평화롭다’. 코란 경전의 한 구절을 따오고 있는 이 시구는 다양한 종교를 향해 열려있는 괴테의 신앙고백이 아닐까. 낯선 문화를 받아들여 내적인 조화를 이룩하고 서로의 이해를 도모하려는 드넓은 포용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열린 태도로 동방과 서방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한 괴테는 겸손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하피스와 정신적 합일을 이룬다. 동양의 이미지를 통해 진정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괴테는 ‘서동 시집’의 이국적 정서가 낯설 것을 염려하여 시집에 ‘메모와 논고’를 실었다. 이 ‘메모와 논고’는 기독교 구약성서 시대와 배화교 중심 문화, 그리고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문학의 근원 형식에 대한 통찰이 담고있다. 동방의 문화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는 산문이다. 국내에서 ‘서동 시집’과 ‘메모와 논고’가 함께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한국괴테학회 산하 단체인 괴테 독회 회원 17명이 공동으로 번역하였다.

동양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그 창조적 수용을 잘 획득하고 있는 ‘서동(西東) 시집’은 문화권 간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된다.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어떻게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교양과 지성을 창출할 수 있는가. 세계를 새롭게 읽어내는 건 결국은 사랑이다. 이질적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자극받아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창출해내는 힘은 그 모든 것에 통하는 궁극적인 자연의 법칙에 다름 아니리라. 하여 다양한 학문과 예술, 다른 문화의 전통과 종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하여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서 만나는 정신이 현재 우리 문명이 도전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시인·사진작가 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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