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 관계, 그 수수께끼를 풀다

스다하치만신사의 본전 전경. 스다하치만신사는 일본 15대 천황인 오진(應神)천황을 모시고 있는 신사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사학계에선 오진천황이 백제계 왕족 출신이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스다하치만신사의 본전 전경. 스다하치만신사는 일본 15대 천황인 오진(應神)천황을 모시고 있는 신사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사학계에선 오진천황이 백제계 왕족 출신이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북동쪽에 있는 하시모토(橋本)시는 오사카(大阪)부와 나라(奈良)현의 접경지역에 있는 지역으로 이 곳에는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유서깊은 신사가 있다. 고대 일본 천왕을 신주로 모시는 스다하치만신사(隅田八幡神社)다. 1834년 이 신사 인근에서 농부가 땅을 파다가 고대의 진기한 유물을 발견한다. 이 유물은 스다하치만신사의 수장고에서 보관돼 오다가 1910년대 초에 일본의 사학자인 다카하시 겐지(高橋健自, 1871-1929)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고대 한·일 관계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자 일본의 손꼽히는 국보급 유물인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이다.

스다하치만신사에 들어서면 본전 옆에 세워져 있는 인물화상경 기념비가 첫 눈에 들어온다. 1300여년 전에 무령왕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화상경이 일본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신사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된다.

인물화상경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일본의 사학계에선 ‘일본의 다른 유물과 비교할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자 일본 고대사의 결함을 보충할 수 있는 극히 유익한 유물’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본전에 참배한 뒤에는 이 기념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스다하치만신사는 일본의 다른 신사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고풍스런 모습에서 지난 세월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신사 입구의 객전 건물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있고 그 정면에 본전이 있다. 그 옆으로는 신사의 궁사가 거처하는 사무소가 있다. 본전 뒤로는 인물화상경이 보관돼 있던 허름한 모습의 보물고가 있다.

취재진의 궁금증은 인물화상경의 진품이 스다하치만신사에 소장돼 있는가 였다.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다하치만신사에 소장돼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스다하치만신사의 책임자인 데라모토 요시유키(寺本嘉幸) 궁사는 출타 중이었다. 대신 궁사의 아들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 들인다. 그는 취재진을 인물화상경이 보관돼 있는 전시실로 안내했다. 사무소에 들어서자 중앙에 인물화상경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모조품이다. 진품이 보관돼 있는 지를 물어보자 별도로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화상경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역시 모조품이다. 대신 진품은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 온다.

전시실 안에는 인물화상경의 국보 지정서와 여러가지 문헌들이 함께 진열돼 있다. 국보지정서에는 소화(昭和) 26년, 즉 1951년에 일본 문화재보호위원회가 지정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인물화상경이 들어 있던 상자도 전시돼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인물화상경은 백제 제25대 무령왕이 일본 왕실의 아우에게 장수를 기원하며 보내준 거울이다. 인물화상경에는 그 역사를 말해 주는 48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인물화상경이 한국과 일본의 사학계를 큰 주목을 받은 것도 이 명문 때문이다.

‘계미년8월10일 대왕년 남제왕 재의자사가궁시 사마 염장수 견개중비직예인금주리2인등 취백상동2백한 작차경(癸未年八月日十 大王年 男弟王 在意柴沙加宮時 斯麻 念長壽 遺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 取白上銅二百旱 作此鏡)’. 이 명문은 ‘계미년 8월10일, 대왕의 시대에 남제왕이 의자사가궁에 있을 때 사마께서 (아우가) 오래 사는 것을 염원하여 보내노라. 개중직인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양질의 백동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로 해석된다.

이 명문에서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이다. 공주 무령왕릉의 지석에 새겨져 있는 ‘사마(斯麻)’와 같다. 계미년은 일본 학자들에 의해 왜곡돼 443년 또는 263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무령왕 재위 기간(501-523년)인 503년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부 학자는 이 청동거울은 무령왕이 동생의 나라, 왜왕을 승인하는 일종의 신임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가장 큰 쟁점은 ‘남제왕이 과연 누구인가다.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선 남제왕이 일본 제26대 ‘게이타이(繼體)천황’이라는 학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503년은 게이타이천황의 재위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이타이천황은 누구인가. 이를 두고 학계에선 갖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곤지왕자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곤지왕의 아들 또는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견해도 내놓는다. 반면 일본 15대 오진(應神)천황이 곤지왕자라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원로 수학자인 김용운 교수는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라는 저서를 통해 게이타이천황이 곤지왕자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황의 이름은 대부분 그 시기의 일본어인 ‘야마토’식 이두로 쓰여 있는데 게이타이의 이름은 ‘오오토(男大迹)’이고 이는 ‘큰 사람’이란 뜻의 ‘오오토(大人)’이며 곤지 역시 ‘큰(=곤) 치(=지)’ 즉 ‘큰 사람’이란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에 곤지와 오오토(게이타이)는 동일 인물이라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또 홍윤기 충남도 백제사 정책특보는 오진천황의 5대손인 남대적(男大迹, 男弟, 오호도)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 남대적이 바로 게이타이천황이며 게이타이천황은 동성왕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게이타이천황이 누구인 지에 대한 견해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어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취재에서 스다하치만신사의 내력을 더듬어 보면서 인물화상경이 일본으로 보내진 배경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 내에는 수 많은 하치만신사(八幡神社)가 있다. 여기서 하치만신은 일본 황실의 종묘신으로서 오진천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의 문헌 등을 통해 전해진다. 스다하치민신사도 예외는 아니다. 오진천황은 한국은 물론 일본의 학계에서도 백제계 왕족 출신이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고 일부 학자는 오진천황이 곤지왕자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이시와타리 신이치로(石渡信一郞)씨는 그의 저서에서 “오진천황은 백제로부터 건너 왔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고대 역사의 진실을 규명할 수는 없지만 인물화상경은 고대 한·일 관계의 실체를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스다하치만신사를 돌아보며 백제 왕실과 왜 왕실의 관계 및 스다하치만신사에서 인물화상경이 발견된 배경에 대해 일단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용 기자 yong6213@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인물화상경이 보관돼 있던 스다하치만신사의 보물고. 1910년대 초에 일본의 사학자인 다카하시 겐지(高橋健自)가 발견해 공개했다.
인물화상경이 보관돼 있던 스다하치만신사의 보물고. 1910년대 초에 일본의 사학자인 다카하시 겐지(高橋健自)가 발견해 공개했다.
인물화상경
인물화상경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