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내용은 실망스럽다. 충청 민심인 원안 추진을 외면하고 수정을 기정사실화 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27일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원안 추진을 공약했던 점을 시인하고 사회 갈등과 혼란을 가져온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건설계획의 수정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수도 분할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저 하나가 좀 불편하고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논리를 폈다. 세종시 수정안의 성격에 대해선 지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교육과학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내비쳤다. 이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세종시 수정방침을 공식 표명함으로써 세종시 성격과 정국은 중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담화 내용을 보면 몇 가지 짚을 것이 있다. 우선 사과의 문제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국면에서 표심을 의식해 충청권과 국민들 앞에 원안 추진과 명품도시 공약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자족 기능을 이유로 내용을 바꾸고 사과 한 마디로 넘어가려 하니 누가 쉽게 동의를 하겠는가. 진정성과 정책의 신뢰 차원에서도 수긍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또한 이런 전례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 갈 것은 명확한 일이다.

‘수도분할’에 대한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수도분할이라는 주장은 이미 2005년11월 헌법재판소가 수도분할이 아니라고 판정함으로써 근거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수도분할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 기본적인 전제는 청와대 이전이 골자다. 9부2처2청의 행정도시 이전은 관련이 없다. 기본적인 인식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논란의 핵심은 수정론을 공식화 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도시 성격에 대해 교육과학 중심에 무게를 뒀다. 이는 정부가 추진중인 수정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요 골자는 행정을 제외하고 기업과 대학, 과학이 혼합된 복합도시 형태를 의미한다. 이는 행정도시 원안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정황이 이렇다 보니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큰 흐름은 두 갈래다. 원안 추진과 수정 수순의 전면전 양상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를 떠올리게 한다. 당장 여권이 여론전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오늘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최고위원단을 청와대로 초청, 조찬회동을 갖고 세종시 대책 등 정국 현안을 논의한다. 세종시 민관합동위도 3차 회의를 갖고 수정안 마련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부터 의견차가 현격하다. 우선 박근혜 전 대표는 기존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안 플러스 알파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여권의 입장에선 여론전에 앞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권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민주당은 자유선진당 등 범야권과 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계까지 아우르는 세종시 수정저지 연대를 선언했다. 선진당도 의원직 사퇴 결의로 배수진을 치며 전면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야권은 물론 친박까지 공조 체제가 구축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충청권의 민심은 사나울대로 사납다. 정 총리가 그제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세종시 건설현장을 찾았다가 계란 세례를 받았다. 이 지역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혁신도시 등과 관련해 민·관·정이 강력히 대응할 가능성도 높다. 한나라당 소속의 이완구 충남지사가 장고에 들어가는 등 충청권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의 움직임도 태풍의 눈이다. 충청권의 반발 수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제 세종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정기국회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국론 분열은 예정된 수순이다. 정부는 다음 달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2월 국회에 상정, 법안 처리 절차를 밟겠다는 복안인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 문제로 정국이 블랙홀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늦긴 했지만 정부와 여권은 이제라도 귀를 열어야 한다. 여론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여론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민심을 외면할 때 댓가는 혹독하다. 정부와 여당은 최종안에 민심부터 담겠다는 각오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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