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오늘 너는 어디에 있니

인간은 환상을 자유만큼 사랑한다. 이는 인간이 가슴 속에 거대한 꿈의 심연을 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이버 시대, 그 훨씬 이전부터 실재와 가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존재의 현실을 이루고 있었으리라. 이 문명을 일구어온 것이 상상력의 힘이 분명하다면 환상이란 삶의 의미를 무한 증식시킬 수 있는 해체적인 시선일지 모른다.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상징계로부터 말이다. ‘앨리스’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환상문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모험과 유희와 역설을 통해 ‘매트릭스’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모든 환상과 상상력의 수원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앨리스’는 주석을 따라 읽은 일이 중요하다. 주석 안에서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연구 진행 중인 ‘Alice’에 나오는 흥미로운 언어와 세계를 보다 깊이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루이스 캐럴 연구가인 마틴 가드너가 주석했다. 수학에서부터 셜록 홈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독보적인 그가 40여 년 전 출간한 ‘주석 달린 앨리스’의 결정판이다. 이 책에서 가드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교묘하게 감추어진 수많은 수학적 수수께끼와 말장난들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다. 덕분에 앨리스를 더 새로운 친숙함으로 만날 수 있다. 대단히 복잡한 언어유희도 결국 심층의 결들을 풍부하게 끌어내고 있다는 데에 그 매력이 있지 않을까. 삽화는 그 당시 ‘이솝우화’를 그려 명성을 얻었던 존 테니얼의 원본 작품.

따라서 이 책은 넌센스로 가득하다. 상황과 언어에 관한 가드너의 주석은 거의 백과사전적이다. 주석을 따라읽는 일이 더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사유와 다양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넌센스 자체가 정상과 비정상의 역전이다. 일상 세계는 뒤집히거나 거꾸로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방식만 제외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할 수 있다.’ 또 그는 거울 속의 유유에 관한 앨리스의 고찰에 대해서도 긴 주석을 달며 시간과 공간의 비대칭성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유기적인 물질들이 비대칭적인 원자 배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으로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수학자, 사진작가이며 소설가로써 넌센스문학을 우리에게 남겼다. 순전히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논리적·수학적인 사고를 활용한 완벽한 창작품 두 권의 앨리스는 그의 약점을 극복한 독특한 소설로 남아 있다. 작가의 철저한 넌센스 정신과 언어유희 신조어 구사는 그후 세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체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까이 가면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140여 년이 된 작품들을 늘 새롭게 하는 걸까. 상상은 인간에게 구원의 양식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흥미진진한 상상의 미로 안에는 근원적이며 존재론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내가 정말로 변했다면, 다음에 해야 할 질문은, 지금의 나는 누구냐는 거야. 아, 정말 엄청난 수수께끼다!”, “그런데 시간은 맞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네가 시간과 친해지기만 하면 시간이네가 좋은 시각에 대부분 시계를 맞춰줄 거야.”

조끼를 입은 토끼를 좇아간 앨리스는 몸이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변화를 겪으면서 줄곧 ‘지금의 나는 누구지?’하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분이고, 그 다음 문장은 시간의 직선적인 차원에 대한 역반사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모든 고뇌가 바로 내 안의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Nonsense’의 사전적인 의미는, ‘not sense’, 곧 비상식적이고 무의미한, 황당무계한 말을 뜻한다. 그것은 부조리하다는 것이지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Nonsense란 meaning이 바로 sense로 연결되지 않는 순간을 말한다. 하여 넌센스 문학은 ‘환타지 문학’처럼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맥의 meaning이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글의 진정한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넌센스 문학의 특징은 운율적 언어들인데,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시와 노래들은 지속적으로 의미를 확장,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수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판타지이다. 거울상이나 시간을 이용한 언어유희 등 ‘반대’를 주제로 한 말장난들이 주로 등장하며, 앨리스의 모험이 체스의 움직임에 비유되고 있다. 앨리스가 거울을 뚫고 거울나라에 들어가 하얀 왕과 여왕, 붉은 왕과 붉은 여왕, 트위들덤과 트위들디, 험프티덤프티, 사자와 유니콘, 하얀 기사를 차례로 만나면서 겪는 모험이다. 거울나라인 만큼, 보이는 것이 반사되어 보이기 때문에 모든 진행은 반대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자주 상상하는 동안 대칭적인 사고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수학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들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앨리스도 자신이 거울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좌우가 바뀐 형태로 봐야 하는 상황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놓인다는 것이다. ‘거꾸로 풀기’ 또한 문제를 푸는 새로운 수학적 상황이다. 이 방식으로 경제에 몰입해 있는 우리 자본주의 일상을 한번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거울나라에서는 기억도 앞뒤로 작용한다. 곧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자리를 지키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이러한 모험과 환상은 고정된 관념에 갇힌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환기시키고, 논리적 모순을 이용한 풍자들은 갇힌 존재에 대해 의문과 유머를 낳는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절반 동안에는 그 순간의 진실함을 확신할 것이고, 다른 절반 동안에는 또 다른 순간의 진실성을 확신할 것이오. 그러니 두 가지 모두 똑같이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오” 가드너가 주석에서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테아에테터스’ 속의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어떤 성자도 어떤 죄인도 이 이상한 나라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아마도 꿈을 꾸는 중이리라.

어느 시대든 수많은 앨리스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오늘은 당신이 아름다운 앨리스가 아닐까.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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