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충성심으로 바라본 일본 정신

가신(家臣)의 원제는 ‘주신쿠라(忠臣臧)’로 ‘의리인정(義理人情)’이라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만들어 낸 1702년의 역사적 사건, ‘아코 낭인 47사 습격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전편에 흐르는 암투와 복수의 과정은 대단히 치밀하다. 저자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는 1933년생의 일본 추리소설 작가이며,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고충의 사각’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면서 유명작가가 됐다. ‘부식의 구조’로 제26회 일본 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에는 봉록과 저택을 몰수당하고 무사를 평민 신분으로 떨어뜨리는 가이에키(改易) 때문에 낭인(浪人)이 된 사무라이들이 적지 않았다.

1701년 아코 번(赤穗藩)의 다이묘인 아사노 다쿠미노카미(淺野內匠頭)가 개인적 원한으로 에도의 최고 의전담당관인 기라 고즈케노스케(吉良上野介)에게 칼을 휘두르고 만다.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기라가 아사노를 심하게 모욕한 게 화근이었다.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는 아사노에게 할복을 명하고 아코 번의 재산을 몰수한다. 폐번(閉藩)이 된 아코의 사무라이들은 떠돌이 낭인 신분으로 전락한다.

그 이후 아코 번의 가로(家老) 오이시 구라노스케(大石內藏助)는 아코 번의 사무라이들을 결집한다. 이후 그들은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낸다. 간페이는 아내 오카루를 유곽에 팔아넘기는 일까지 감내하고, 고나미는 복수를 위해 떠나는 리키야와 하룻밤뿐인 부부의 연을 맺는다. 기헤이는 아내와 이혼하고 어린 자식의 목숨도 내놓는다. 하지만 120여 명의 동지 중에서 최후까지 남은 이는 47명뿐이었다.

1702년 1월30일 큰 눈이 에도성을 뒤덮던 날, ‘어떤 산도 군주의 은혜보다 가볍고, 한 가닥 머리카락도 신하의 목숨보다 무겁다(萬山不重君恩重, 一髮不輕我命輕)’는 한문이 새겨진 일본도를 찬 오이시 구라노스케 이하 47명의 아코 사무라이들은 기라의 저택으로 잠입, 원수의 목을 치는 데 성공한다. 오이시는 막부 감찰관의 저택으로 사람을 보내 자수의 뜻을 밝히고 센카쿠지(泉岳寺)의 주군 무덤에 기라의 머리를 바친 뒤 막부의 처분을 기다린다. 이들은 나중에 막부의 명에 따라 전원 할복한다.

문화 콘텐츠의 DNA는 스토리텔링이고 그 뿌리는 바로 고전이다. ‘주신쿠라’는 일본의 정신을 표상하는 국민서사시로 칭송받으며 일본인들에게 여러 가지 장르에서 리바이벌되고 있다. 우리 한국의 고전이 춘향전, 심청전이라면 일본인의 정신적 뿌리는 바로 ‘주신쿠라’라 할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동양 삼국의 사회조직은 시스템보다는 의리인정이 바탕에 있다. 따라서 ‘주신쿠라’가 보여주는 정신세계는 비록 무대는 한국이 아니지만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

강병호<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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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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