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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내 길을 달렸다

2009-10-22기사 편집 2009-10-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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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대전 전국체전서 20년 마라톤 인생 금빛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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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네 바퀴 반을 달려온 ‘봉달이’ 이봉주(39)의 마라톤 인생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봉주는 한국 마라톤 중흥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최후의 ‘1세대 현역’이었다. 생애 마지막으로 제90회 전국체전에 충남대표로 출전한 이봉주는 21일 오전 8시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을 출발해 금산 방향으로 하소동까지 돌아 출발지점으로 들어오는 42.195㎞ 풀코스를 2시간15분25초 만에 주파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의 41번째 풀코스 완주이자 20년 마라톤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한 은퇴경기였다.

대전일보가 주최하는 3·1역전경주대회를 통해 기린아로 떠오른 이봉주는 1990년 청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완주에 도전, 2시간19분15초로 2위를 차지하며 한국 마라톤을 짊어진 ‘국민 마라토너’로 떠올랐다.

1970년 10월 10일생으로 올해 불혹인 이봉주는 20년간 숱한 대회에서 역주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순박한 외모로 ‘봉달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배달민족의 정서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친구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전국체전 마라톤 심판장)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곧바로 선수 인생을 접었지만 이봉주는 소처럼 묵묵히 큰 발을 내디뎠고 기록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자신을 위협할 라이벌도, 무섭게 치고 올라올 후배도 없는 상황에서 이봉주는 고독하게 달렸다.

1993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호놀룰루 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3분16초를 찍고 1위를 차지한 이봉주는 1996년 폭염 속에서 치러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마라톤의 기상을 세계에 알렸다.

19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7분44초라는 한국신기록으로 2위에 올랐고 통산 20번째 완주였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2시간12분32초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는 9년이 지난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한국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1위(2시간9분43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1위(2시간14분4초)를 차지하며 꾸준히 세계 정상급 기량을 뽐냈던 이봉주는 그러나 2004년 기대를 모았던 아테네 올림픽에서 14위에 그치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레이스 막판 역전 불굴의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을 앞세워 전세를 뒤집는 게 이봉주의 전략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더는 세계무대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봉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막판 기적과 같은 역전 레이스를 펼쳐 2시간8분4초를 찍고 정상을 밟아 보스턴 마라톤 이후 6년 만에 국제대회 우승컵을 안았다.

대회를 한 번 치르기 위해 마라토너는 3500-4000㎞를 달린다. 이봉주가 완주를 못 한 두 번의 대회를 더하면 모두 43차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면서 그는 지구 둘레(약 4만㎞)를 4바퀴 반이나 달렸던 셈이다.

올림픽 월계관을 쓰지 못했지만 세계 마라톤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41번 완주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년간 오롯이 앞만 보고 달린 이봉주의 작은 체구와 순박한 미소는 오랫동안 국민들의 가슴에 간직될 것이다.

송영훈 기자 syh0115@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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