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메시지 물결

이봉주의 은퇴경기에는 어머니 공옥희(75)씨와 큰형 이성주(51)씨 등 가족과 10여년간 이봉주를 지도한 오재도(52) 감독 등 이봉주와 끈끈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찾아와 뜨거운 눈물과 박수로 피날레를 축하해줬다.

이봉주가 달려온 20년간의 마라톤 인생은 이들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됐다.

◇가족들의 마지막 응원=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출발점부터 아들을 격려한 공옥희씨는 “나이도 많은데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잘 뛸 수 있을 지 불안하다”면서도 이봉주에게 ‘파이팅’을 외쳐줬다.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공씨는 “아들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며 “혹여 다칠까봐 경기는 보지 않고 기도만 드렸는데 이제 마지막 경기라니 시원하다”면서도 눈물을 머금었다.

은퇴경기를 우승한 아들을 꼭 껴안으며 “이제 편안하게 살아라”며 “그동안 너무 고생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대견해했다.

큰형인 이성주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봉주가 마라톤을 하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며 “워낙 성실하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루도 훈련을 거른 날이 없다 보니 명절에도 거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며 “경기가 있는 날에는 누나들이나 어머니는 가슴 떨려서 경기를 보지 못하니까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는데 목소리만 들으면 대강 컨디션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봉주가 결승점을 통과하고 가뿐 숨을 고르는 사이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우석(7), 승진(6)군 형제가 달려와 ‘아빠의 승리’를 축하하는 뽀뽀를 퍼부었다.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도 남편을 꼭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7년이란 긴 연애 끝에 결혼해 15년을 함께 살아오며 누구보다 옆에서 이봉주를 응원했던 동반자로, 감회가 남달랐다.

김미순씨는 “그동안 한 길만 걸었는데 이제 그마둔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어젯밤 10시에 시합 전 마지막 통화를 하면서 마음 편히 갖고 달리라고 응원해줬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해서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3일전에 왼쪽 골반이 아파서 치료를 받았는데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염증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마지막 경기여서 3개월이 넘게 많이 훈련했고 순위보다는 기록갱신을 하고 싶었는데 마지막 소망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남편의 은퇴를 축하했다.

◇성실하고 큰 선수로 길러낸 지도자=젊은 선수 시절 이봉주를 가르쳤던 지도자은 “성실함이 지금의 이봉주를 만들었다”며 마지막 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봉주가 무명이던 고등학교 시절 충남도 대표로 발탁했던 문흥건(49) 충남육상연맹 전무(49)는 “5등까지만 대표로 뽑는 선발전에 봉주가 6등을 했지만 지도자들이 다들 ‘저런 성실한 선수는 언젠가 잘 될 것’이라고 의견이 모아져 한 명을 트랙 대표로 돌리고 대신 이봉주를 대표로 선발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도자들도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 정도로 생각했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워낙 성실했기에 이렇게까지 큰 선수가 된 것 같다”고 이봉주를 칭찬했다.

광천고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무명이었던 이봉주를 서울시청에 입단시켰던 오재도(52) 감독 역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성실함만큼은 유명했던 선수”라고 기억했다.

오 감독은 이봉주가 서울시청에 입단한 이후에도 시키는 훈련을 모두 소화하고 혼자 나머지 훈련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회상했다.

오 감독은 “이봉주는 5시30분이면 일어나 매일같이 혼자 달렸다”며 “겨울에 그 시간이면 아직 깜깜해서 발이라도 헛디뎌 다칠까 봐 내가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도로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늘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이봉주도 운동을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다.

오 감독은 "이봉주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몸이 좋지 않아 기권하더니 실망해서 도망쳐서 내가 직접 어머니와 이봉주를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며 ”힘들어서가 아니라 대회에서 탈락한 것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 자체가 이봉주가 얼마나 승부욕 강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지도자들은 “동년배인 황영조에 비해 스피드가 부족해 무명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오랫동안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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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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