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문화가 중심이 되는 시대다. 문화예술이 국가 경제의 기초이자 근간이란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국가마다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각국은 미술관·박물관을 새로 짓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핵은 미술이다. 장르 간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미술은 보존성이 강한 반면 음악·연극·춤은 그렇지 않은 탓이다. 파리나 로마를 떠올리면 단박에 수긍이 간다. 두 도시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조각·건축·회화를 아우르는 미술 작품만으로도 문화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러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들고 있지 않은가.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의 인파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문화유적들이 즐비한 로마 역시 도시 전체가 미술작품 전시장 같은 곳이다.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자리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 미술관 도시이자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꼽히기도 한다. 퇴락한 탄광 도시가 1997년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빌바오의 성공은 세계 현대미술계를 이끄는 구겐하임 미술관이기에 가능했다. 방대한 양의 소장품을 무기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메탈플라워(금속제 꽃)라 불리는 미술관 건물도 관심의 대상이다. 컨벤션 센터와 호텔, 콘서트 홀 등 도시 인프라까지 갖추면서 스페인의 랜드마크가 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관광수입도 천문학적이다. 빌바오란 도시는 몰라도 구겐하임 미술관은 알 정도다. 문화 경쟁력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문화의 힘과 가치를 알기에 국가마다 미술관을 짓는 데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정부가 옛 기무사 터에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는 것도, 자치단체마다 시·도립 미술관을 만들어 어떻게 하면 높은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문화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미술관은 ‘창의력’과 ‘상상력’ 발전소나 다름이 없다. 미술관은 SOC(사회간접자본)와 같은 존재다. 국민의 미적 안목을 높여 그것이 널리 확산되면 문화산업을 키우는 동력이 된다. 국민의 문화적 소양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각 나라가 도시 중심지에 미술관을 짓고 다른 어떤 예산보다 우선해 투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견줄 대상은 되지 못하더라도 대전 시립미술관과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시민의 자랑거리임은 분명하다. 시민의 문화 사랑방이자 문화향수를 달래주고 문화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샘물 같은 존재다. 문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대전 미술문화의 성전이다. 두 미술관은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과 함께 대전 문화의 자존심이자 대전의 가장 중요한 문화 SOC다. 대전시가 미술관 운영 및 관리에 필요한 예산지원에 인색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두 미술관이 남모르는 속병을 앓고 있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우선 벽이 고르지 못하다. 그림이 걸려야 할 벽에 소방 배관이 불거져 나와 작품을 제대로 걸 수가 없다. 지은 지 10년 된 아직은 새 건물인데 어찌된 일인지 천장에서 비까지 샌다. 설계 잘못이나 부실시공을 지적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건물에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한 만큼 개보수를 서두르는 게 순서다. 하지만 대전시는 진단만 받고 예산을 이유로 주판알만 튕기며 어떻게 하면 수술을 미룰까 셈을 하고 있다.

이응노 미술관 역시 건축물 자체로서는 명품일지 모르지만 미술관 기능 면에서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 전시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전시된 작품까지 햇빛이 들어와 얼비쳐 감상에 지장을 초래한다. 종이 작품은 손상될 우려마저 있다. 여러 차례 지적됐는데도 임시방편으로 블라인드를 설치한 게 고작이다.

대전시 역작인 3000만 그루 나무심기는 도심을 푸르게 하지만 잘 가꿔진 미술관은 시민의 마음을 푸르고 윤택하게 한다. 두 미술관 개보수는 시민의 마음의 밭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의미다. 당장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 해를 늦추면 시민 마음의 밭은 그만큼 황폐화된다는 점을 대전시 관계자는 알아줬으면 한다. 한밭 수목원 옆 미술관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대전시는 물론 시민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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